[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제 노래가 저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에게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기도 하고, 어떤 분에게는 젊음을 함께 한 노래이기도 하고, 또한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자 위로가 되는 그런 노래이기도 하죠. 오늘 공연은 제 노래와 함께 해오신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되돌아가는 공연이 되면 좋겠습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이승철 공연은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음이 입증됐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2TV 2026 한가위 대기획 ‘당신의 삶은 네버엔딩 스토리-이승철’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과 국가대표 축구 경기 등 굵직한 스포츠 콘텐츠들과 경쟁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평범한 노래도 명품으로 만들어내는 이승철의 저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1만 2천여 관객과 함께 지난 8월 1일 진행된 이날 공연에서 이승철은 ‘희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마지막 콘서트’, ‘서쪽하늘’, ‘잊었니’, ‘비와 당신의 이야기’, ‘그 사람’, ‘My Love’, ‘오늘도 난’, ‘소리쳐’, ‘Never Ending Story’, ‘아마추어’, ‘말리꽃’, ‘인연’ 등 40년 음악사를 대표하는 명곡들을 압도적인 라이브로 선보였다.
‘내가 많이 사랑해’는 직접 피아노 연주에 나선 특별게스트 박보검과 듀엣으로 불렀고,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비가 와’도 관객들과 율동을 함께 하며 소통을 이어나갔다.
관객들은 노래마다 환호와 함께 떼창으로 화답했고, 이승철은 이런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관객과 호흡을 맞춰나갔다. 관객들은 특정 나이대에 치우치지 않고 어린 10대부터 70대의 중장년층까지 다양하게 이승철의 음악을 두루 즐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날 공연은 이승철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황제밴드와 30인조 현악 연주, 200여대의 스피커를 활용한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과 대형 무대 연출이 더해지며 단순한 기념 공연을 넘어 이승철의 40년 음악 인생을 집대성한 무대를 완성시켰다.
화려한 기타 테크닉을 지닌 기타리스트 박창곤과 질주감 좋은 드러머 이상훈, 수시로 트럼펫을 부는 브라스맨 멤버는 음악전문가가 아니어도 생생한 리얼 밴드 사운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운드가 훌륭해도 이승철의 ‘보컬’이 가미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법. 필자는 이승철이 20대 중반일때 이대앞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피부가 하얗고 살이 통통한 부잣집 아들 같은 느낌이 났다. 이승철은 자신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그의 공연을 봤기 때문에 그의 노래와 창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이승철의 발라드가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은 타고난 가창력에 절제하는 맛이 가미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활 시절에도 귀를 때리는 기타 소리의 하드록에 절규하는 로커가 아니라 서정성이 짙은 편안한 목소리로 록발라드를 소화했다.
그의 노래는 애절은 하되 감정 과잉은 없다. 이는 록발라드나 팝발라드 공히 적용되는 원칙이다. 고음에서 감정을 터뜨려야 할 클라이맥스 시점에 샤우팅 창법 대신 오히려 힘을 뺀 채 절제하는 게 이승철의 매력이다.
자극의 강도를 높이려고 과도하게 울지 않고 미세한 표현을 살려냄으로써 편안하게만 진행되는 지루함을 덜어내고 디테일한 감성까지 전달해낸다. 이는 자연스레 이승철 노래의 중독성으로 이어진다. 이승철은 어린 친구라도 이 원리를 터득해 노래를 부르면 음악 서바이벌 오디션 ‘슈퍼스타K’의 초중반 라운드는 통과시켰다.

록밴드 부활의 보컬 출신인 이승철은 록발라드와 팝발라드를 두루 장악했다. 그러면서 사이사이 새롭고 생경한 장르에도 도전해나갔다. ‘희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Never Ending Story’ 등 애절한 록발라드로 소녀팬의 감성을 자극하더니, ‘긴하루’ ‘소리쳐’ 등 편안한 팝발라드로 부드러운 감성을 제조했다. 초기에 부르던 팝발라드 ‘노을 그리고 나’(1999 하광훈 작곡)와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와 팝발라드의 수작 ‘My Love’ 등을 부드럽게 부르면서도 애절한 느낌을 강화시킨다. 이승철은 애절한 느낌을 만드는 걸 의도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며 그대로 부른다고 했다.
이승철이 드라마나 영화 OST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애절하고 호소력을 갖추고도 부담스럽지 않는 목소리가 영상콘텐츠의 애절함을 한층 더 강화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 가사로 자연스럽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이승철의 이런 노래가 깔리면, 남녀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감미로움과 부드러움을 강화시켜주고, 남녀가 방해요소를 만나 헤어지거나 못만나고 있을 때는 애절함의 강도를 높여준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부르는 이승철은 환갑에 이르러 ‘관조적 창법’이 되면서 오히려 짙은 감성을 우려낸다. 점점 담백하고 덤덤하게 풀어내는 독보적인 창법이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다.
이승철은 김태원 외에도 전해성, 홍진영, 하광훈, 윤일상, 조영수, 윤명선이 작곡한 노래들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다. 그는 이들 작곡가들에게 저작권자로서의 수익을 높여준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이승철의 창법은 이론으로 정립된 게 아니라, 실전을 통해 다듬어지면서 매끄럽고 원숙해졌다. 오래전 대마초 사건으로 방송활동을 못했던 시기의 365일중에 200일은 콘서트를 했고, 그 때 생긴 별명이 ‘라이브의 황제’다. 그 후에도 매년 40회 이상은 꾸준히 공연해오고 있다.
이승철이 감성을 주조하는 힘이 대단하고, 앞으로도 대중들과 계속 호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공연을 통해 형성된 음악적 감각과 해석력이 무르익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 듣고싶은 사람 때문에 부른다. 딱 한 분 있어도 부른다.”
대중의 기억에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된 이승철 노래의 롱런 이유이기도 하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