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한국사회에서 '어디에 사느냐'는 단순한 거주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서울과 수도권에 산다는 것은 더 많은 일자리와 교육기회, 문화시설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넘어 개인 능력과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반대로 지방은 낙후와 소멸, 실패를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소비된다.

이 같은 공간의 물리적 위계는 사회·문화 곳곳으로 파생된다. 이른바 '지잡대'라는 멸칭이 생겨나고 'X소기업'처럼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게 단적인 예다.
한정된 기회와 자원을 모두가 누릴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그 기회 바깥으로 밀려난 다수를 마치 사회에서 도태된 존재처럼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조건중 하나가 '지방'이다. 수도권 대학과 대기업에 진입하지 못하고 지방에 남거나 지방 대학·기업을 선택한 이들에게 '뒤처졌다'는 낙인이 따라붙고 결국 '지방에 남으면 뒤처진다'는 인식은 지방이라는 공간을 개인 능력과 사회적 위치까지 규정하는 잣대로 만든다.
시야를 넓혀보면 이는 특정대학이나 기업에 대한 비하를 넘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 자체를 낮춰 보는 사실상 지방혐오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서울에 살아야 성공한다'는 인식은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 된다. 수도권 집중 결과로 만들어진 격차가 다시 지역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고 그 평가가 사람들의 수도권 이동을 부추긴다.
공간의 격차가 인식의 격차로 인식의 격차가 다시 공간의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지방소멸을 단순히 출생아 감소나 청년인구 유출, 산업침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데는 일자리와 교육 같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배경에는 '지방에서는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사회적 인식도 작용한다.
지역에 남는 선택 자체가 손해처럼 여겨진다면 인구를 붙잡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변화가 먼저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의료·교통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물리적인 인프라만 늘린다고 해서 서울을 필두로 한 지역간 위계의 시선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방을 '수도권보다 부족한 곳'으로 규정하는 인식 자체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지역의 가치를 서울과의 거리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 있다. 지방에 사람이 살고 기업이 자리 잡으며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한다면 그 공간을 먼저 열등한 곳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일은 도로와 일자리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우열로 나누는 보이지 않는 위계를 허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