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중동 원유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우회 수송로인 동서 송유관까지 멈췄다. 국내 정유사들은 10월까지 도입할 원유 대부분을 확보해 당장 물량이 부족해질 가능성은 작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11월 이후 조달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산 원유를 대신할 미국산 가격이 뛰는 가운데 운임과 보험료까지 오르고 있어서다. 고유가 충격이 정유업계를 넘어 해운과 항공, 석유화학업계로 번지면서 ‘물량 부족’보다 ‘원료 확보 비용’이 국내 산업계의 현실적인 위험으로 떠올랐다.

16일 정유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동서 송유관은 지난 11일 친이란 세력의 드론 공격을 받은 뒤 가동이 중단됐다.
동서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의 얀부까지 약 1200㎞를 연결한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에 차질이 생기면 동부에서 생산한 원유를 육상 송유관으로 얀부까지 옮긴 뒤 홍해를 통해 수출하는 핵심 우회로다.
하루 최대 수송능력은 700만 배럴이며 최근에는 세계 원유 공급량의 4~5%에 해당하는 하루 400만~500만 배럴을 운송한 것으로 추산된다.
송유관이 멈추면서 얀부항의 원유 선적도 중단됐다. 사우디는 일부 유럽 고객사에 이달 말 예정된 원유 인도를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복구 시점은 불투명하다. 미국 에너지부는 수일 안에 재가동할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완전 복구까지 5~6주가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체 복구에 앞서 일부 구간의 가동이 먼저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공급 불안은 국제유가를 밀어 올렸다. 15일(현지시간)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2.9% 오른 배럴당 108.75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38% 상승한 105.8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두 유종 모두 지난 5월 19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월까지 물량 확보…문제는 11월 이후 가격
정부와 정유업계는 단기적인 국내 원유 수급 차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이 지난 7~8월 도입한 원유는 전년 동기 물량의 100%를 웃돈다. 9~10월 도입 예정 물량도 전년 동기 대비 90% 이상 확보한 상태다.
원유는 계약부터 국내 도착까지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이미 계약한 물량이 들어오는 10월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지금부터 계약해야 하는 11~12월 도입분은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의 영향을 직접 받게 된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산 원유 도입을 늘리며 공급선을 다변화해왔다.
한국석유공사와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사우디산 원유 도입량은 1억7317만9000배럴로 전년 동기보다 12.0% 감소했다. 이라크산과 쿠웨이트산도 각각 41.9%, 42.6% 줄었다.
반면 미국산 원유 도입량은 16.2% 증가한 1억1316만8000배럴로 집계됐다. 중동산 감소분의 일부를 미국산이 대체한 것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SK에너지는 최근 12월 도착 예정인 미국산 WTI 400만 배럴을 11월 ICE 브렌트유 스와프 가격보다 배럴당 약 24달러 높은 수준에 구매했다.
GS칼텍스도 12월 도착분 미국산 원유 200만 배럴을 11월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약 24달러 높은 가격에 확보했다. 한 달 전 미국산 원유의 두바이유 대비 도착도 프리미엄이 배럴당 약 13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부담이 두 배 가까이 커졌다.

미국산은 중동산보다 운송 거리가 길어 용선료와 금융비용도 더 들어간다. 국내 정유설비가 주로 처리해온 중동산 중·고유황 원유와 성상이 달라 전량을 미국산으로 대체하기도 어렵다.
송유관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정유사들은 현물가격 상승뿐 아니라 운임과 보험료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10월 물량까지는 어느 정도 확보했지만 송유관 가동 중단으로 중동산 원유의 우회 수송도 어려워졌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장 정상 가동에도 위험이 생길 수 있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유길 막히자 산업계 '비용 비상'…해운·항공·석화도 긴장
해운업계도 중동 항로 불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4척으로 최근 10일 평균인 18척을 크게 밑돌았다.

원유 수입처가 중동에서 미국 등으로 바뀌면 유조선의 항해 거리가 길어진다. 한 척이 화물을 싣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늘면서 시장에 공급되는 선박이 줄고 운임이 상승할 수 있다.
유조선사는 운임 상승의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전쟁위험 보험료와 연료비, 선박 대기 비용도 함께 늘어난다. 선종과 운항 노선에 따라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엇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준으로 중동산 원유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선박유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입처 다변화가 되면 그만큼 원유선의 이동거리가 늘어나면서 실제 운송량이 줄어 들기 때문에 유조선 운임이 상승, 결론적으로 원유 운송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유가 충격은 항공업계에도 곧바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항공유는 항공사 전체 영업비용의 통상 20~30%를 차지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항공권에 유류할증료를 반영할 수 있지만 실제 조정까지는 시차가 발생한다.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면 항공사의 수익성 부담은 더 커진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정세 불안정으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됨에 따라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며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석유화학업계는 핵심 원료인 나프타 수급을 주시하고 있다. 국내 나프타 수요의 약 45%를 수입에 의존하는 가운데 중동산 비중도 높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과 원유 도입 감소가 겹치면 나프타 가격 상승과 공급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석유화학 제품은 수요 상황에 따라 원료비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어렵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프타 가격까지 오르면 수익성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중동 정세 영향으로 나프타를 비롯한 국제 원료가격의 변동성이 상당히 큰 상황"이라며 "원가 상승분이 제품가격에 곧바로 반영되지 않는 만큼 기업별 재고와 제품 수요를 함께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