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진광찬 기자] "고기만 샀는데 벌써 9만원 썼어요. 다른 데서라도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정육점에서 막 장을 보고 나온 김모(69)씨 손에는 한우가 든 검은봉투가 들려있었다. 추석을 맞아 자녀들이 집에 온다는 김씨는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식재료를 사러 시장을 찾았다.
김씨는 "애들이 온다고 하니 고기를 안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이것저것 담기에는 부담스럽다"며 "다른 건 가격을 봐가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추석을 일주일가량 앞둔 경동시장은 평일 오후인데도 북적였다. 손수레를 끌거나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좁은 골목을 쉴새없이 오갔다. "싸게 드려요", "명절 준비하세요"라는 상인들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가게 앞에는 사과와 배, 배추, 무부터 한우와 돼지고기까지 명절 식재료가 빼곡히 놓였다.

발길은 분주했지만 장바구니가 채워지는 속도는 더뎠다. 가게마다 가격을 묻는 손님은 많았지만 곧바로 물건을 집어 드는 사람은 드물었다. 가격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거나 "한바퀴 돌아보고 올게요"라며 발길을 돌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북적이는 인파와 달리 지갑을 여는 손길은 신중했다.
품목에 따라 소비자 반응도 엇갈렸다. 과일가게에서는 지난해처럼 가격표를 보고 놀라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반면 채소가게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집어 들거나 "조금만 달라"며 구매량을 줄이는 손님이 이어졌다.
대목을 기다려온 상인들 표정도 밝지만 않았다. 이곳에서 20년동안 채소를 팔았다는 한 상인은 "오는 사람은 많은데 실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명절이라고 하면 평소보다 넉넉하게 사갔는데 요즘은 딱 필요한 만큼만 사간다"며 "아직 추석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명절이 가까워지면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올해 추석 장바구니 물가는 품목마다 온도차가 뚜렷하다. 지난해 가격이 크게 뛰었던 사과와 배 등 과일은 비교적 안정됐지만 계란과 한우 등 축산물과 일부 채소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소비자들이 장바구니 부담이 줄었다고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1일 사과 홍로 상품가격은 10개에 2만2976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12.1% 내렸다. 배 원황 상품도 2만5833원으로 8.2% 저렴해졌다.
반면 축산물 가격은 오름세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4일 특란 30구 소비자가격은 7166원으로 지난해 같은달 하루 평균 가격보다 7.2% 높았다. 한우 등심 1등급은 100g당 1만582원으로 6.1%, 삼겹살은 2899원으로 3.4% 각각 비쌌다.
채소류도 품목별 가격차가 컸다. 지난 11일 배추는 한포기에 5647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12.9% 낮았지만 한달전보다는 14.9% 올랐다. 무는 2245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9.0%, 애호박은 2571원으로 66.7% 각각 뛰었다.
결국 차례상 비용도 다시 30만원을 넘어섰다. 한국물가정보가 조사한 올해 4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30만2500원으로 지난해보다 1.2% 올랐다. 과일값 하락으로 줄어든 부담을 축산물과 일부 채소가격이 오르면서 전체 비용을 끌어올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뒤에도 경동시장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소비자들은 가게마다 멈춰서서 가격을 확인했다.
추석 대목은 돌아왔지만 장바구니를 채우는 방식은 달라졌다. 예전처럼 명절을 앞두고 넉넉하게 담기보다 필요한 것만 골라샀다. 북적이는 시장 골목에서 소비자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 한번더 가격을 붇고 한번더 양을 줄였다.
/진광찬 기자(chan2@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