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결국 엔비디아죠."
회사 이름부터 '반란'입니다. 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Rebellions)은 엔비디아의 독주에 도전하는 'K-엔비디아' 대표주자로 꼽혀왔습니다.
그런데 그 '반란군'의 수장이 지난달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났습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와 황 CEO는 미국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회동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엔비디아의 투자·인수 가능성부터 두 회사 칩을 함께 쓰는 기술협력까지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리벨리온은 정부가 'K-엔비디아'로 키우고 있는 대표 AI 반도체 기업입니다. 지난 3월 국민성장펀드 직접투자 1호로 선정돼 첨단전략산업기금 2500억원을 투자받기로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당장 인수·합병(M&A)보다 서로의 기술과 협력 가능성을 살펴보는 자리였을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로 탐색하는 단계 아니겠느냐"며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옆에 리벨리온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붙였을 때 시스템 성능이나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를 보는 논의도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리벨리온은 "엔비디아 협력과 관련해 현재 외부에 확인해드릴 사항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항마'인데 GPU 옆에 NPU?
리벨리온은 2020년 설립된 AI 반도체 설계전문회사(팹리스)입니다. 회사 이름 '리벨리온(Rebellions)'도 반란이라는 뜻입니다.
오진욱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황 CEO가 "누구를 향해 반란하는 것이냐"고 묻자 박 대표와 함께 웃으며 "결국 엔비디아"라고 답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GPU와 NPU가 반드시 한쪽을 밀어내야 하는 관계는 아닙니다. 최근 AI 서버는 GPU와 CPU, NPU, 데이터처리장치(DPU) 등을 용도에 맞춰 함께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GPU가 대규모 연산을 폭넓게 처리한다면 NPU는 AI 추론처럼 특정 연산을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으로 처리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DPU는 네트워크와 데이터 이동 등 GPU가 직접 맡지 않아도 되는 일을 덜어줍니다.

엔비디아도 GPU만 쓰지 않습니다. 최신 랙 단위 AI 시스템인 '베라 루빈 NVL72'에는 루빈 GPU 72개와 베라 CPU 36개, 네트워크·데이터 처리를 맡는 블루필드-4 DPU 등이 함께 들어갑니다.
지난해 말에는 빠른 AI 추론 기술을 가진 미국 그록(Groq)과 추론 기술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습니다. 인수 대신 필요한 기술을 가져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는 루빈 GPU와 추론용 '그록 3 LPU'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GPU와 추론 특화 칩에 일을 나눠주는 구조입니다.

업계에서는 이 그림을 리벨리온에도 대입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GPU 옆에 그록 LPU를 붙이듯 리벨리온 NPU를 함께 쓰고, 용도에 따라 연산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GPU와 NPU, DPU를 용도에 따라 섞어 쓰는 방향"이라며 "큰 연산은 GPU가 맡고 일부 추론은 NPU가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벨리온에도 엔비디아와의 기술협력은 해외 시장을 넓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엔비디아 GPU와 함께 서비스를 돌린 경험을 확보한다면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진입할 때 활용할 레퍼런스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도 지난 10일 국회 NPU 정책토론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증"이라며 실제 트래픽을 장기간 처리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도 AMD GPU·국산 NPU '섞어쓰기'
정부 정책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AMD와 손잡고 AMD의 CPU·GPU와 국산 NPU를 한 시스템에서 연결하는 '이기종 AI 컴퓨팅' 실증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리벨리온을 비롯해 퓨리오사AI, 딥엑스, 모빌린트, 하이퍼엑셀 등 국내 5개 NPU 업체들은 이미 자체 소프트웨어(SW)를 갖추고 있습니다. NPU에 맞게 AI 모델을 돌릴 수 있도록 컴파일러와 런타임, 개발도구 등을 각자 개발해왔습니다.
정부 사업의 핵심도 이들에게 없던 SW를 새로 만들어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회사의 칩과 SW를 한 시스템에서 연결해 실제 서비스에서도 제대로 돌아가는지 검증하는 데 가깝습니다.
같이 쓰려면 어디까지 맞출까
실제 기술협력이 시작되면 과제도 생깁니다.
GPU와 NPU를 한 시스템에서 돌리려면 SW와 연결 방식을 맞춰야 합니다. 어떤 연산을 GPU에 보내고 어떤 일을 NPU에 맡길지 정해야 하고, 칩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식도 조율해야 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이 쓰려면 서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결국 어디까지 정보를 열어줄지가 문제"라며 "자기들이 가진 핵심까지 다 보여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엔비디아도 쿠다(CUDA)를 개발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지만 핵심 기술과 플랫폼 주도권은 직접 쥐고 있습니다. 국산 NPU 업체들도 자체 SW를 경쟁력으로 키우고 있는 만큼 어디까지 연결하고 어디부터 독자 기술로 남길지가 숙제입니다.
M&A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리벨리온 기술이 국가첨단전략기술이나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할 경우 해외 기업의 인수 과정에서 산업통상부(산업부)의 승인 절차와 기술보호 문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퓨리오사AI 백준호 대표가 지난해 미국 메타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사례가 다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엔비디아와 리벨리온 사이에 기술협력이나 인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GPU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GPU·NPU·DPU처럼 각자 잘하는 칩을 섞어 쓰는 방식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의 '대항마'를 자처해온 리벨리온도 결국 같은 시장 안에서 경쟁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만남이 단순한 인사에 그칠지, 실제 협력으로 이어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