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은 미국서, 설비는 유럽서…현대제철 7.8조 공장의 속사정

철강은 미국서, 설비는 유럽서…현대제철 7.8조 공장의 속사정

루이지애나에 연산 270만t 전기로 제철소…2029년 상업생산
직접환원·전기로는 伊 다니엘리, 열연은 獨 SMS가 공급
대형 공정 패키지 공급할 국내 업체 부족…관세·조달비 변수

[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58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투입해 연산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짓는다.

철강 생산기지를 미국 현지에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지만 제철소의 직접환원·전기로·열연·냉연 등 핵심 공정 설비는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업체들이 맡는다.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되 공장을 만드는 기술과 장비는 글로벌 전문기업에서 조달하는 구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HPLS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1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포스코 등이 공동 투자한 '현대-포스코 루이지애나 스틸(HYUNDAI-POSCO Louisiana Steel·HPLS)'은 최근 현지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올해 4분기 본공사에 들어가 2029년 상업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HPLS의 연간 생산능력은 270만t이다. 이 가운데 180만t은 자동차용 강판, 나머지 90만t은 일반재 생산에 활용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등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한다.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철강 관세 부담과 물류비를 줄이고 안정적인 자동차 소재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제철소의 핵심 생산설비는 미국이나 한국이 아닌 유럽 업체들이 공급한다.

이탈리아 제철설비 기업 다니엘리는 직접환원 공정과 전기로, 연속주조 등 쇳물을 만들고 슬래브를 생산하는 상공정 설비를 맡는다. 철광석을 환원해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하고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철강 반제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독일 SMS그룹은 슬래브를 압연해 얇은 강판으로 만드는 열연과 관련 후공정 설비를 공급한다. 프랑스 피브스(Fives)는 자동차용 강판 생산에 필요한 냉연·마무리 공정 설비에 참여한다.

현대제철이 핵심 공정 설비를 유럽 업체에서 조달하는 이유는 이들 기업이 대규모 일관제철소를 구축한 경험과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리와 SMS는 세계 각지의 제철소에 직접환원·전기로·연속주조·압연 설비를 공급해온 대표적인 철강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피브스도 냉연과 도금, 마무리 공정 분야에서 글로벌 공급 경험을 갖고 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국내에는 해당 규모의 핵심 공정 설비 기술과 공급 경험을 갖춘 업체가 없다"며 "대규모 제철설비는 검증된 해외 전문업체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 김광무 포스코 부사장 등이 공장 건설을 알리는 시삽 세리머니에 참여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이 같은 조달 방식은 HPLS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국내 제철소에 대형 설비를 새로 구축하거나 기존 생산라인을 고도화할 때도 해외 전문업체의 공정 기술과 장비를 활용해왔다.

다만 이를 제철소 전체가 유럽산 설비로 채워진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설비업체가 핵심 공정의 설계와 주요 장비 공급을 맡더라도 실제 제작과 설치 과정에는 여러 국가의 협력사가 참여한다.

설비 규모가 큰 만큼 일부 구조물과 부품은 미국 현지에서 제작·조립할 수 있다. 배관과 전기공사, 건축·토목, 철강 자재 등도 현지 조달이 가능한 품목은 미국에서 공급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이 부품 제작이나 엔지니어링, 시공 과정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제철은 전체 설비와 자재 가운데 한국·미국·유럽에서 각각 어느 정도를 조달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모든 설비와 자재가 유럽에서 완성품 형태로 미국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며 "현지 조달이 가능한 철강 소재와 자재는 미국에서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에서 4번째)이 HPLS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 시삽 세리머니를 마친 후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관세는 비용을 좌우할 변수다. 유럽이나 다른 국가에서 미국으로 설비와 자재를 반입하면 품목과 원산지에 따라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미국의 통상정책이 바뀌거나 적용 세율이 높아지면 실제 조달비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현대제철은 현재 관세가 사업 일정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총사업비에는 설비 구매와 물류, 시공 등에 필요한 비용이 전반적으로 반영돼 있으며 관세만 별도 항목으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는 생산과 수요처는 미국에 두면서 핵심 공정 기술은 유럽에서 가져오고, 건설과 자재 조달은 현지에서 병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완성된 철강은 미국에서 생산해 현대차·기아의 현지 공장 등에 공급한다. 반면 공장을 구축하는 단계에서는 직접환원과 전기로, 압연 등 분야별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업체를 활용한다.

결국 HPLS가 보여주는 현지화는 모든 설비와 자재를 미국에서 조달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산과 공급망의 중심을 미국으로 옮기면서도 제철소의 품질과 가동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에는 유럽의 검증된 기술을 적용하는 '선택적 현지화'에 가깝다.

현대제철은 이를 통해 미국 자동차강판 시장을 공략하고 현대차그룹의 현지 공급망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설비 관세와 현지 조달 비중을 어떻게 관리해 58억달러의 총사업비와 2029년 가동 일정을 맞출지가 프로젝트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