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경쟁자인데 미국선 '한배'…현대제철·포스코가 손잡은 이유

국내선 경쟁자인데 미국선 '한배'…현대제철·포스코가 손잡은 이유

정의선 “차세대 모빌리티 기여”…장인화 “국내 경쟁자지만 글로벌 시장서 협력”
현대제철·포스코, 美 제철소 공동 투자…생산·판매·기술 협력 추진
車강판 현지 생산으로 공급망 강화…현대차그룹·양사 북미 공략 속도

[아이뉴스24 양길모 기자] 국내 철강시장에서 경쟁해 온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에서는 한배를 탄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생산 확대에 필요한 자동차강판을 현지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미국의 통상 장벽에 대응하고 현지 완성차 업체까지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은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전기로 일관제철소 기공식을 진행했다. 실제 착공은 올해 4분기로 예정됐으며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제철소의 연간 생산능력은 270만t이다. 이 가운데 180만t을 자동차강판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내에서 전기로를 활용해 쇳물부터 자동차강판까지 생산하는 일관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

이번 투자의 가장 큰 배경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생산 확대다. 현대차·기아는 현재 미국 공장에서 한국산 자동차강판과 현지 조달 물량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루이지애나 제철소가 가동되면 현대차그룹은 완성차뿐 아니라 핵심 소재인 자동차강판까지 미국 현지 조달 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고 한국에서 철강재를 운송하는 데 따르는 물류와 통상 부담도 낮출 수 있다.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현대차·기아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기반으로 미국 자동차강판 시장에 직접 생산거점을 확보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생산되는 자동차강판이 현대차·기아에만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 생산을 기반으로 GM·폭스바겐·BMW 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고객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대차·기아 역시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미국 현지 철강사 등의 자동차강판을 계속 활용할 예정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가 현대차그룹만을 위한 전용 공급기지라기보다 북미 자동차강판 시장 전체를 겨냥한 생산거점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기공식에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자동차 제조사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협력함으로써 태평양을 넘어 양국의 경제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며 "앞으로 미국과 한국의 미래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이 지난 7월 2일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포스코그룹]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포스코는 프로젝트 지분 20%를 확보해 투자자로 참여한다. 향후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제품 일부의 판매와 기술 협력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판매 물량과 기술 협력 범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에서 손을 잡은 데는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담을 나누는 동시에 각사가 미국 현지 생산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의 수요를 기반으로 북미 자동차강판 사업을 확대할 수 있고, 포스코 역시 직접 대규모 제철소를 단독 건설하지 않고 미국 내 자동차강판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통상환경 변화도 양사가 현지 생산을 선택한 배경이다. 철강을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대신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면 관세 등 통상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포스코 역시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자동차강판 시장을 공략하고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장인화 포스코 회장도 기공식에서 "포스코하고 현대제철이 국내에서는 경쟁자의 입장에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서로 협력해 한국 기업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연구원이 독일 ECB(Euro Car Body)에 참석한 글로벌 고객사들에게 탄소저감 자동차강판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현대제철]
포스코와 현대제철 CI. [사진=각 사 ]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현대차그룹이 추진하는 미국 공급망 현지화 전략과도 맞물린다. 현대차그룹은 2025~2028년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고 이 가운데 61억달러를 부품·물류·철강 등에 투입해 현지 조달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미국 투자 범위가 완성차 공장을 넘어 부품과 물류, 철강 등 자동차 생산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이 가운데 자동차 생산의 기초 소재인 철강의 현지화를 담당하게 된다.

결국 현대제철과 포스코의 미국 협력은 현대차·기아에 자동차강판을 공급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제철은 안정적인 초기 수요를 발판으로 북미 자동차강판 시장을 확대하고, 포스코는 현지 생산거점을 확보해 통상 장벽에 대응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도 자동차강판 공급망을 현지화해 미국 생산 확대를 뒷받침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경쟁자인 두 철강사가 미국에서 손을 잡은 이유다. 2029년 제철소가 가동된 이후 현대차·기아를 넘어 미국 내 글로벌 완성차 업체까지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이번 협력의 성과를 가를 전망이다.

/양길모 기자(dios102@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