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100일간의 정기국회에 들어선 국민의힘이 민생 법안은 더불어민주당과 협력하고, 쟁점 법안과 예산안에는 강하게 맞서는 '투트랙' 전략을 가동했다. 지난달 의원 연찬회에서 채택한 133개 자체 입법과제도 실제 성과로 연결해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첫 시험대는 오는 3일 열리는 본회의다. 민주당이 검찰개혁 후속 법안 처리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실시 여부를 아직 공식화하지 않았다.
여야는 정기국회 첫날인 1일 민생 법안 처리에는 뜻을 모았다.국민의힘과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첫 연석회의를 열고 양당의 대선·지방선거 공통 공약을 중심으로 민생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양당 공약을 비교한 결과 공통 과제는 74개가량으로 파악됐다. 허영 민주당 정책위부의장은 "대선 때 공통 공약과 지방선거 공통 공약을 추려보니 74개 정도"라며 실무 협의를 제안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여야가 대립하더라도 민생이라는 공통분모 앞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각 당이 준비한 정책과 법안을 펼쳐놓고 교집합이 되는 민생 법안부터 추려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자"고 말했다.
양당 정책위는 연석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2주마다 만나 민생 법안 처리 방안을 논의하고, 오는 15일 조찬 형식으로 두 번째 회의를 열 예정이다.

국힘 "'대한민국 RE-100 프로젝트'로 정부여당 견제"
국민의힘은 여야 공통 법안과 별도로 자체 입법과제도 추진한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의원 연찬회에서 주거·경제·세제·복지·안전·균형발전·청년 등 7개 분야의 133개 중점 입법과제를 채택했다. '대한민국 RE-10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정부·여당의 입법을 견제하는 동시에 민생 대안을 제시하는 100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주요 과제에는 민간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검찰 보완수사권 존치, 청년의 주거비·세금 부담 완화 등이 담겼다. 장동혁 대표는 연찬회에서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모아 국민들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 결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133개 과제를 발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제 입법 성과로 정책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우리가 대안까지 다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전날 정진욱 민주당 의원과 반도체 정책을 논의한 사례를 들며 여당의 관련 입법 움직임에 맞서 국민의힘도 더 적극적인 법안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체 정책과 입법 논의가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좀 많이 답답하다"고 했다.
양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유능한 경제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외연 확대와 당내 화합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당의 고질적인 문제는 내부 갈등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생 협치' 분위기, 쟁점 법안 이어질지는 불투명
민생 법안에서 마련된 협치 분위기가 쟁점 법안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임 정책위의장은 이날 정책위 연석회의에서 "쟁점 법안은 충분히 숙의하고 보완 입법에는 함께 협력하자"고 말했다. 노란봉투법과 보완수사권 폐지로 국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 대책도 함께 논의하자고 민주당에 제안했다.
국회는 오는 3일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연다. 민주당은 10월 2일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에 맞춰 기존 법률에 남아 있는 검찰청·검사 관련 규정과 용어, 형사사법 절차를 정비하는 후속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비롯한 여권의 검찰개혁 방향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7월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됐을 때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민주당은 3일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가능성에 대비해 소속 의원들에게 정기국회 기간 해외 출장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다만 국민의힘은 이날까지 필리버스터 실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강도 높은 검증을 예고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정책위부의장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거론하며 "이틀, 사흘 밤을 새우는 한이 있어도 청문회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또다른 '한랭전선', 미래대응기금
또 다른 전선은 내년도 예산안이다. 정부가 편성한 2027년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었다. 국세수입은 반도체 경기 호조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194조2000억원 증가한 584조4000억원으로 전망됐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정부 예산안을 '재정 폭주 고무줄 예산'으로 규정했다.
유 의원은 "내년도 국세수입이 194조2000억원이나 늘어났는데도 국가채무는 오히려 106조원 증가해 1519조8000억원으로 확대됐다"며 "도대체 언제 빚을 갚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내년 162조3000억원 규모로 기금을 조성해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 등에 45조4000억원을 투입하고,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세수 변동 등에 대비한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제시한 총지출 820조9000억원에 여유자금 104조4000억원을 더하면 사실상 예산 규모가 925조30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보다 27.1%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다만 925조3000억원은 정부가 발표한 공식 총지출 규모는 아니다. 정부는 104조4000억원이 당장 사업에 지출되는 돈이 아니라 세수 부족에 대비하거나 국채 신규 발행을 줄이기 위해 적립하는 여유자금인 만큼 총지출에 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정부 "국회가 사전 심의·의결...'쌈짓돈' 아니야"
기금에 대한 국회 통제의 실효성도 예산 심사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최초 기금운용계획이 국회의 사전 심의와 의결을 거치고 변경 내용도 국회에 보고되는 만큼 '정부 쌈짓돈'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반면 정부가 주요 항목 지출액의 일정 범위에서 국회의 재심의 없이 운용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어 야당은 통제가 느슨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대규모 세수 증가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올해 107조8000억원에서 내년 3조1000억원으로 줄어들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8.3%로 개선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대로 개별 사업의 낭비·선심성 여부를 따져 삭감 대상을 가려내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정기국회 전략의 성패는 133개라는 입법과제의 숫자나 필리버스터 시간에 달린 것이 아니다. 여야가 확인한 74개 공통 공약 가운데 얼마나 많은 법안을 실제로 처리하고, 정부·여당의 정책에 어떤 대안을 내놓느냐가 대안정당의 역량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