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해머 반납하며 편지 한 장…65세 스위스 선수 “대구, 다시 오겠습니다”

마지막 해머 반납하며 편지 한 장…65세 스위스 선수 “대구, 다시 오겠습니다”

대회 전 가장 먼저 경기장 찾은 다니엘 멜리…8월10일부터 매일 훈련
조직위 도움받아 M65 해머던지기 49m82 ‘스위스 신기록’·은메달

[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대구에 와서 가장 먼저 경기장을 찾았던 선수가 모든 경기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해머와 편지 한 장이었다.

“그동안 정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번6945 스위스의 다니엘 선수 [사진=대구시]

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WMAC대구2026)에 출전한 스위스의 다니엘 루이스 멜리(Daniel Louis MELLI·65).

그는 대구에서 49m82를 던졌다.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자신의 조국 스위스의 신기록까지 새로 썼다.

하지만 마지막 훈련을 마친 그가 기억한 것은 기록만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에서 자신이 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다니엘은 현지 환경에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일찌감치 대구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난 8월 10일부터 경기장을 찾았다.

대회 참가 선수 가운데 가장 먼저 경기장을 찾아 훈련 준비에 나선 선수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디에서 훈련해야 하는지, 경기에서 사용할 용기구는 어떻게 빌릴 수 있는지 등을 조직위원회에 물었다.

조직위는 다니엘이 정상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경기장 이용과 용기구 대여 등을 안내하고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훈련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다니엘은 대회 기간까지 매일같이 경기장을 찾았다.

65세의 마스터즈 선수는 낯선 대구의 기후와 경기장 환경에 자신의 몸을 조금씩 맞춰갔다.

그리고 지난 25일.

남자 M65 해머던지기 5㎏ 경기에 출전한 다니엘의 해머가 49m82를 날아갔다.

결과는 은메달.

그보다 더 특별한 기록도 따라왔다.

스위스 신기록이었다.

대구에 누구보다 일찍 와서 매일 경기장을 찾았던 시간이 자신의 새로운 기록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스위스의 다니엘 선수(왼쪽) [사진=대구시]

그러나 이야기는 시상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경기를 마친 다니엘은 마지막 훈련까지 마친 뒤 자신이 사용했던 해머를 조직위에 반납했다.

그리고 해머와 함께 마음 하나를 더 놓고 갔다.

직접 쓴 감사편지였다.

다니엘은 편지에서 “조직위 모든 분들께 그동안 정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남겼다.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겠다.”

국제대회를 치르는 개최도시가 받을 수 있는 평가 가운데 어쩌면 가장 반가운 말이다.

다니엘의 편지에는 자신의 기쁨만 담기지 않았다.

시상식 사진과 함께 자신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호주의 필립 스피비를 축하하는 글도 남겼다.

그는 필립의 경기력을 두고 “정말 차원이 달랐다”고 평가했다.

자신 역시 스위스 신기록을 세웠다는 기쁨을 전하면서도 자신보다 뛰어난 기록을 낸 경쟁자를 인정하고 축하했다.

이기기 위해 경쟁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의 도전을 존중하는 것. 마스터즈 육상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얼굴이었다.

세계대회가 끝나면 수많은 숫자가 남는다.

몇 개국에서 몇 명이 참가했고, 몇 개의 기록이 나왔으며 얼마나 많은 메달이 주인을 찾아갔는지가 대회의 성적표가 된다.

하지만 숫자로 기록하기 어려운 성적표도 있다.

낯선 나라에서 온 선수 한 명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개최도시를 어떤 기억으로 간직하고 돌아가는지, 그리고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는지다.

다니엘에게 대구는 이제 단순히 국제대회가 열린 도시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먼저 경기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던 곳이고, 매일 해머를 던지며 자신과 싸웠던 곳이며, 마침내 49m82라는 자신의 새로운 역사를 만든 도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의 얼굴이 남아 있는 곳이다.

8월 10일 가장 먼저 경기장을 찾았던 65세 스위스 선수는 마지막 해머를 반납하고 대구를 떠날 준비를 했다.

그가 남긴 편지에는 은메달보다 오래 남을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WMAC대구2026이 받아든 가장 따뜻한 메달인지도 모른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