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가족이 있다.
늦은 귀가를 탓하지도 않고,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힘든 날에는 말없이 곁을 지키고, 좋은 날에는 함께 들뜬다.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이유가 되고, 때로는 외로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대한민국의 가족 형태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혼자 사는 청년부터 중장년, 노년층까지 1인 가구가 보편적인 가구 형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가족의 의미 역시 변하고 있다.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만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서로 의지하며 정서적으로 연결된 관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 반려동물이 있다.
반려견은 더 이상 마당을 지키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아침을 함께 시작하고 퇴근을 기다리며 산책하고 잠들기 전까지 하루를 공유하는 존재가 됐다.
때로는 가족 간 소통의 중심에도 반려견이 있다.
“밥은 먹였어?”
“오늘 산책은 누가 갈 거야?”
“얘 오늘 기분이 좀 이상하지 않아?”
반려견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각자의 방과 스마트폰으로 흩어진 가족을 다시 거실로 불러내는 것도 때로는 반려견이다.
특히 1인 가구에게 반려견의 존재는 더욱 특별하다.
자신을 기다리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생활에 리듬을 만든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챙기고, 산책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이유가 생긴다.
반려견이 주는 삶의 희열은 거창하지 않다.
잠시 외출했다 돌아왔을 뿐인데 온몸으로 반겨주는 순간, ‘산책’이라는 말에 신이 나 뛰어다니는 모습, 잠들면서 사람에게 몸 한쪽을 살며시 기대는 작은 행동에서 웃음이 난다.
문제는 이 작은 가족이 아플 때 시작된다.

◇ 병원 문턱에서 현실이 되는 ‘치료비’
반려견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동물병원은 단순히 동물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찾는 병원이다.
그러나 진료와 검사, 입원, 수술이 이어지는 순간 보호자는 치료 가능성과 함께 비용부터 걱정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다.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치료비가 수십만원에서 경우에 따라 상당한 금액까지 커진다면 보호자의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잔인한 선택지가 남는다.
치료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다.
반려동물을 선택한 사람이 비용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가 모든 반려동물 의료비를 부담하자는 주장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가 반려동물을 새로운 산업으로 바라본다면 이제는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국민이 실제로 부담하는 비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출발점은 세 가지다.
◇ 첫째, 동물병원 진료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동물 의료는 사람의 의료와 다르다.
동물의 상태와 질환, 검사와 치료방법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동물병원에 동일한 가격을 요구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보호자가 진료비를 제대로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최소한 자주 시행되는 검사와 처치, 예방접종, 입원 등 주요 진료항목에 대해서는 보호자가 치료 전에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을 획일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격을 알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보호자가 치료방법과 예상 비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장 통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기본적인 알 권리에 가깝다.
진료비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동물병원에 대한 불필요한 불신도 줄일 수 있다.
◇ 둘째, 펫보험은 ‘가입률’보다 ‘보장률’을 봐야 한다.
고액의 반려동물 의료비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펫보험이다.
방향 자체는 맞다.
하지만 보험이 존재한다는 것과 실제 의료비 안전망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보장 대상과 제외 항목, 자기부담금, 가입 연령, 기존 질환에 대한 제한 등 상품마다 조건이 복잡하다면 소비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반려동물은 나이가 들수록 의료 이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정작 치료가 많이 필요한 시기에 보험료 부담이 커지거나 충분한 보장을 받기 어려워진다면 보험의 사회적 효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펫보험 활성화를 추진한다면 단순히 가입 건수를 늘리는 데 정책 목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
실제 치료비 가운데 보험이 어느 정도를 보장하고 있는지, 소비자가 보험금을 얼마나 편리하게 청구할 수 있는지, 보험 가입 전 보장과 제외 조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보험의 성과는 가입자 숫자가 아니라 아픈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갔을 때 확인된다.
◇ 셋째, 1인 가구 시대의 ‘반려동물 돌봄 안전망’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중요한 문제다.
혼자 사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입원하면 집에 남겨진 반려견은 누가 돌볼 것인가
고령의 보호자가 요양시설에 들어가야 한다면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보호자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1인 가구가 늘어날수록 이런 문제는 개인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사회가 반복해서 마주하게 될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1인 가구나 홀로 사는 고령층에게 반려동물은 단순한 취미의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유일한 동반자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니 모든 문제도 개인이 해결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정책의 역할이 끝날 수 있을까
최소한 보호자의 갑작스러운 입원이나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단기 위탁·돌봄 연계체계 정도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예방적 건강관리와 동물등록, 중성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지원 역시 사회적 비용과 효과를 따져볼 만하다.
무조건적인 현금 지원이 답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버려지는 동물을 구조하는 정책만큼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예방하는 정책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 반려동물 정책을 ‘산업정책’에만 가둬서는 안 된다.
반려동물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사료와 용품, 미용, 호텔, 장례, 의료, 보험을 비롯해 관련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산업이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의 성장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산업 규모가 커지는 동안 국민이 부담하는 양육비와 의료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험은 실제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고령화되는 반려동물을 돌볼 사회적 기반은 준비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반려동물 정책을 농정이나 동물복지의 한 영역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1인 가구 정책과 주거, 복지, 고령사회, 사회적 고립 문제까지 연결해서 접근해야 할 시대가 됐다.
동시에 보호자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말한다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먼저다.
충동적인 입양을 줄이고 동물등록과 예방접종, 건강관리와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경제적인 부담과 노령기 돌봄까지 고려한 뒤 가족으로 맞이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정책 역시 권리만 지원해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반려문화와 사회적 안전망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 ‘반려견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정책’
사람은 반려견에게 사료와 잠자리를 준다.
하지만 반려견은 사람에게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것을 돌려준다.
기다림과 반가움, 웃음과 위로다.
누군가에게는 산책을 위해 하루 한 번 세상 밖으로 나가게 해주는 존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 존재가 아팠을 때 통장 잔액부터 확인해야 하는 현실.
보호자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그 가족을 맡길 곳부터 걱정해야 하는 현실.
보험에 가입하고도 치료를 받을 때마다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다시 따져야 하는 현실.
이제 정부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생활의 문제다.
진료비의 투명성을 높이고, 펫보험을 실질적인 의료비 안전망으로 만들며, 1인 가구와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체계를 준비하는 것
반려동물 정책의 다음 단계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정책이 가족의 정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변하면 정책이 그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현관문을 열면 오늘도 작은 가족이 달려온다.
말은 하지 못하지만 누구보다 반갑게 사람을 맞는다.
국민에게 반려견은 이미 가족이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반려견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선언이 아니다.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는 정책이다.
/수원=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