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고용주가 재직 중인 병역기피자를 해직하도록 정한 병역법 제76조 제1항 해당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27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A씨가 "병역기피를 이유로 사업체에 취업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직하도록 정한 병역법 해당 조항은 양심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9명 중 헌법불합치 5명, 단순위헌 2명, 기각 2명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적 공백을 막기 위해 해당 조항을 2028년 2월 29일까지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다만 이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2028년 3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병역의무자가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은 중대하고 병역기피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불확정 개념인 정당한 사유의 유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를 가리기 위해서는 병역의무자의 개별적·구체적 사정 등에 관한 사실조사와 규범적 평가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무청은 그 해당 여부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따라서 병무청이 병역의무자의 병역기피 여부를 판단하고 고용주에게 해직 통보 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병역의무자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한 것인지 여부에 관해 의견 및 자료를 제출하고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그러나 심판대상조항을 비롯한 병역법, 병역법 시행령, 병역법 시행규칙 등을 살펴봐도 병무청이 병역기피자의 취업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유관기관에 조회하거나 고용주에게 해직을 통보하고, 불응 시 고용주를 고발하도록 하는 절차만 자세히 규정돼 있다"며 "정작 해직 대상자인 병역의무자가 병역의무를 불이행한 사유나 경위를 소명하거나 이의할 수 있는 절차는 전혀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했는지 여부를 다투는 병역의무자에게 의견 및 자료를 제출하고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병무청의 일방적 판단과 조치에 의해 고용주로부터 해직을 당하는 불이익을 받게 하고 있어 병역의무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병역의무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시했다.

김복형·마은혁 재판관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병역기피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더해 일체의 취업까지 금지하는 것은 병역기피자에게 병역의무 이행을 촉구 내지 간접강제하고 병역법위반을 억지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했다. 또 "심판대상 조항이 병역법위반죄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병역기피자를 직장에서 해직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해직된 이후 병역법위반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미 직장을 잃은 병역기피자로서는 구제받을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정미·조한창 재판관은 이 조항을 합헌으로 보고 A씨의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재판관 등은 "민주국가에서 병역의무는 납세의무와 더불어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의 존립유지를 위해 국가 구성원인 국민에게 그 부담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병역의무의 부과를 통해 국가방위를 도모하는 것은 국가공동체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헌법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다수 의견은 병역의무 기피자에게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 심판대상 조항의 위헌 부분이라고 판단했지만 두 재판관은 "청구인은 해직 자체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할 뿐, 해직 절차에 있어서 의견 제출이나 이의 등의 기회가 없었던 점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구인은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대체역법에 따른 편입신청을 세 차례 안내받고도 신청하지 않아 결국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처분받았다"면서 "청구인에게는 병역의무 불이행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헌법불합치 의견 및 단순위헌 의견에서 요구하는 절차적 보장이 마련돼 있었다고 해도 청구인의 해직 여부에 대한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 재판관 등은 "그렇다면 병역을 기피할 경우 취업 제한 및 해직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 충분히 고지되고 있고 일의적인 해직이 공정하고 효율적인 병역의무 이행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심판대상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었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병역거부자인 A씨는 과거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종교적 양심을 근거로 한 현역 입영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병무청은 A씨에게 현역병 추가 입영을 통지하면서 대체역 편입 신청 절차를 세 차례 안내했지만 A씨는 대체역 편입을 신청하지 않았고 현역병으로도 입영하지 않았다. 이에 다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2021년 10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는 항소심 재판을 받던 2023년 5월 B업체에 취업했다. 같은 해 8월 인천병무지청장은 B업체에 "병역을 기피하고 있는 사람은 임직원으로 채용될 수 없고 이를 위반해 채용할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며 A씨가 재직 중이면 알려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B업체는 사흘 뒤 이를 이유로 A씨를 해고했고, A씨는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후 11월 항소가 기각되자 상고했다.
이날 헌재가 심판한 병역법 제76조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고용주는 '징집·소집을 기피하고 있는 사람'을 공무원이나 임직원으로 임용하거나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재직 중인 경우에는 해직하도록 정해왔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