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미군기지에서 화학물질 유출 등 주민 안전과 직결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까지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한미 간 대응체계 개선이 추진될 전망이다. 지난달 평택 K-55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이른바 ‘백린 누출 추정 사고’를 계기로 미군과 우리 정부, 지자체를 잇는 정보 전달체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국회의원(경기도 평택시갑)은 19일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K-55 미군기지(오산공군기지) 사고 당시 대응 과정을 짚으며 외교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홍 의원은 미군기지 내부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화학물질 유출이나 화재 등 기지 밖 주민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관할 지자체가 사고 물질과 위험성, 현장 조치 상황 등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가 된 상황은 지난 7월 28일 발생했다.
당시 오산공군기지에서는 정기 탄약 점검 과정에서 탄약 상자 내부에 백린으로 의심되는 잔여물이 발견됐다. 미군 측은 사고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탄약 상자에서 ‘백린 결정화(white phosphorus crystallization)’로 인한 잔류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백린은 연막탄이나 조명탄, 소이탄 등에 사용되는 물질로 공기와 접촉할 경우 자연 발화할 수 있고 인체에 접촉하면 심각한 화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초기 대응 단계에서 주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평택시는 평택경찰서를 통해 관련 상황을 전달받은 뒤 같은 날 오후 5시37분께 K-55 미군기지 내 백린 누출 가능성을 알리며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다. 이후 오후 6시13분께 부대 내부 조치가 완료됐다는 상황을 토대로 대피명령을 해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은 사고 자체뿐 아니라 사고 발생 이후 정확한 정보가 어떤 경로와 속도로 전달됐느냐에 맞춰졌다.
홍 의원에 따르면 관할 지자체인 평택시는 사고 발생부터 현장 조치가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미군 측으로부터 해당 물질의 정확한 성격과 위험도, 대응 상황 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적시에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SOFA 환경분과위원회에 참여하는 정부 관계부처 역시 사고 당일 발견 물질의 정확한 성분을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주민 대피라는 적극적인 안전조치가 시행됐다는 점에서 초기 정보 전달체계가 보다 정교하게 작동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물질의 성격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주민 안전을 우선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지자체가 위험 수준과 현장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미군과 관계기관의 정보가 최대한 빠르게 공유돼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사고 발생 9일 뒤인 지난 8월 6일 다시 정리됐다.
주한미군은 정밀 분석 결과 당시 탄약 상자에서 발견된 물질이 당초 우려됐던 백린이 아니라 ‘무해한 표면 부식 물질’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백린 누출 가능성을 전제로 대피명령이 내려졌지만 이후 정밀 분석에서는 다른 물질로 확인돼 사고 초기 단계에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체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됐다.
특히 평택은 K-55 오산공군기지를 비롯해 대규모 주한미군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개별 사고가 아닌 미군기지 인접지역의 재난·안전 대응체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군기지 내부 사고라고 하더라도 화재나 유해물질 유출 등이 기지 외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사고 초기부터 미군·중앙정부·지자체가 동일한 수준의 핵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연락망과 대응 절차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주민들에게 대피까지 요구한 사고라면 정확한 정보가 신속하게 공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미군기지 내 사고라 하더라도 피해 가능성에 직접 노출되는 것은 결국 인근 주민인 만큼 관할 지자체가 정확한 상황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교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SOFA 합동위원회 한국 측 대표 역할을 맡고 있는 외교부가 주한미군 및 관계부처와 협의해 사고 발생 단계부터 지자체까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홍 의원은 “외교부는 SOFA 합동위원회 우리 측 대표인 만큼 미군기지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미군과 관계부처, 관할 지자체 사이에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외교부는 미군기지 인근 지자체에 사고 관련 정보가 신속하게 전달돼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관련 개선방안을 검토해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답변했다.
외교부의 검토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경우 미군기지 내 사고 발생 시 초기 상황과 사고 물질, 위험성, 현장 대응 상황 등을 관할 지자체와 보다 신속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연락·보고체계 마련이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홍 의원은 “미군기지와 인근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안전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며 “실효성 있는 정보공유체계가 마련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미군기지 내 사고를 ‘기지 내부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인근 지역의 재난·안전 문제와 연계해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외교부와 주한미군이 사고 발생부터 상황 종료까지 어떤 정보를 어느 기관에, 어느 시점까지 전달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지가 제도 개선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평택=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