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1호'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공정위 "5년간 가격상한·정보차단"

'대산1호'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공정위 "5년간 가격상한·정보차단"

LDPE·EVA 과점 심화 우려에도 "5년 행태적 조치면 경쟁제한 우려 해소"
수출가격 연동해 인상률 제한·기존 생산 품목 공급 유지 의무·경쟁민감정보 공유 금지

[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경쟁당국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등 4개사의 석유화학 사업재편('대산1호') 기업결합 건에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국내 저밀도폴리에틸렌(LDPE)·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EVA) 시장 과점 심화로 경쟁제한 우려가 있지만, 기업결합 자체를 막는 구조적 조치 대신 5년 간의 행태적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선에서 매듭지었다.

전성복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2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롯데케미칼, 롯데대산석화,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의 대산1호 기업결합 건을 심사한 결과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

LDPE·EVA 시장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우려가 있음에도 △가격 인상률을 수출가격 변동률 기준 제한 △기존 생산 그레이드 전 품목 공급 유지 의무 △가격·수량·원가·재고 등 경쟁민감정보 공유 금지 △양사 임직원 겸임 금지 △전적 임직원 복귀 시 1년간 LDPE·EVA 업무 배제 등으로 경젱 제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전 국장은 "단독효과·협조효과는 있지만 구조적 조치(결합 불허·주식취득 금지)에 이를 만큼의 경쟁 제한성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촘촘하게 설계한 행태적 조치와 5년의 기간, 연장 가능성이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가격 인상률만 제한했을 뿐 절대 가격을 낮추거나 높이는 조치가 아니어서, 기존 HD현대케미칼로부터 저가에 구매하던 수요업체가 손해를 볼 우려는 크지 않다고도 설명했다.

전성복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산 1호' 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HD현대케미칼이 롯데대산석화를 흡수합병하고 롯데케미칼이 합병존속법인 지분을 추가 취득함에 따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는 HD현대케미칼 지분을 각 50%씩 보유해 공동 지배하게 된다. 대산산단 내 양사 나프타분해설비(NCC)와 석유화학 생산시설도 통합 운영된다.

공정위는 이번 결합으로 LDPE·EVA 시장의 경쟁사업자 수가 4개에서 3개로 줄어드는 점을 문제 삼았다. 결합 후 3사의 생산능력 비율은 약 50:25:25, 판매량 기준 합산 점유율은 75%를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제품 모두 상품 동질성이 높고 경쟁사 정보 파악이 쉬운 시장 특성상 사업자 간 가격 협조 유인이 커진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는 과거 담합 전례도 근거로 들었다. 2007년 12월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등 7개 사업자가 LDPE 판매가격을 담합해 과징금 541억원을 부과받은 사례와, 1990년대 공급과잉기 LDPE 시장에서 담합이 10여년간 지속됐던 전례가 거론됐다. 또 롯데케미칼이 별도로 추진 중인 여수1호 사업재편(한화솔루션·DL케미칼·여천NCC 관련)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복수 합작법인 간 지분연계로 협조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판단에 반영됐다.

HD현대케미칼은 2021년 말부터 에틸렌·프로필렌·폴리에틸렌 계열 제품 생산·판매를 본격화한 후발 사업자로, 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가장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왔다. 공정위는 결합 후 저수익 그레이드 생산이 중단되면 제품 다양성이 줄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구매자 대부분이 대체 거래선을 찾기 어려운 중소 플라스틱 가공업체인 데다, 경쟁사 설비 가동률도 이미 95~100%에 달해 대체 공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고려됐다.

시정조치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 인상률을 수출가격 변동률에 연동한 부분이다. 전 국장은 "국내 시장보다 경쟁이 치열한 수출시장 가격이 경쟁가격에 가장 근접한다고 판단해 기준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2015년 있었던 석유화학 기업결합 시정조치에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한 전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수출 비중은 각각 70% 이상인 만큼, 수출 가격 인상률 제약이 실효성있는 조치라는 것이다.

시정조치 기간을 5년으로 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과거 심결례(3년·5년 사례 혼재)와 함께, 사업재편 완료까지 통상 3년이 걸리고 실제 시장 영향은 그 이후에 본격화된다는 점, 중국 등 해외 경쟁 상황을 종합했다고 밝혔다. 5년 후 연장 여부는 그 시점의 경쟁제한성 판단 근거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따져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정보교환 금지 범위는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3사 간 관계에 한정되며, 한화·LG 등 제3자와의 거래는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계열회사·다른 피심인으로부터 구매·중개판매가 필요한 특정 사유가 있을 경우 내부통제장치를 갖추고 공정위 승인을 받으면 정보 교환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번 시정조치는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 제도에 따라 결합 당사 회사가 제출한 시정방안을 고려해, 이해관계자·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됐다.

이 사건은 지난해 11월26일 임의적 사전심사 신청 접수 후 올해 6월 정식 신고를 거쳐 이번 결론에 이르렀다. 공정위는 후속 사건인 여수1호 건은 관련 상품시장 구성이 달라질 수 있어 이번과 같은 처리 기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통합법인 HD현대케미칼은 이번 기업결합 심사와는 별개로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며, 구체적 방안은 추후 공정위와 협의해 발표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시정조치 이행 여부를 지속 점검하는 한편, 여수1호 등 후속 석유화학 기업결합에 대해서도 시장경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