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상의 디지털자산] 지갑에서 현금이 사라졌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김주상의 디지털자산] 지갑에서 현금이 사라졌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김주상 IT컨설턴트·한국디지털자산연구소장·미래금융 연구자

[아이뉴스24 안영록 기자] <아이뉴스24>는 디지털자산이 만들어갈 금융과 산업의 변화를 깊이 있게 살펴보기 위해 18일부터 김주상 한국디지털자산연구소 소장의 ‘김주상의 디지털자산과 미래금융 인사이트’를 총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재에서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본질부터 스테이블코인, CBDC, RWA, DeFi, Web3, 디지털자산 제도화와 온체인 금융의 미래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이나 투자상품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데이터와 국내외 산업 사례를 통해 새로운 금융질서가 가져올 기회와 위험을 균형 있게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사진=김주상 한국디지털자산연구소장]

[김주상의 디지털자산] 아침에는 휴대전화로 커피를 사고, 점심에는 카드로 식사하며, 저녁에는 앱으로 관리비를 낸다.

하루 종일 돈을 썼지만 지폐 한 장 만지지 않는 날이 이제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현금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들어왔을까.

단순히 카드와 스마트폰이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은행의 장부, 플랫폼의 화면, 통신망과 인증체계가 지갑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통장 잔액을 돈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숫자를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고 상품과 교환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돈의 본질은 종이나 금속보다 사회적 신뢰에 가깝다. 디지털 결제가 늘었다는 것은 돈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신뢰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장소가 지갑에서 시스템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분명 편리하다. 거스름돈을 챙길 필요가 없고 거래기록이 남으며, 온라인에서도 즉시 결제할 수 있다. 소상공인은 매출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소비자는 지출을 쉽게 확인한다.

한국은행은 현금 이용 감소와 경제의 디지털 전환에 대응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을 연구해 왔다. 2025년 실거래 테스트에서는 은행예금을 전자지갑의 예금토큰으로 바꿔 결제하고, 조건에 맞는 곳에서만 쓰이는 디지털 바우처 가능성도 시험했다.

그러나 편리함은 새로운 의존을 만든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꺼지거나 통신망이 멈추고, 계정이 정지되면 잔액이 있어도 돈을 쓰지 못할 수 있다.

[사진=본인 제공]

결제 기록이 한곳에 쌓일수록 소비자의 생활은 더 정밀하게 분석된다. 현금 거래에서는 남지 않던 시간·장소·품목 정보가 디지털 결제에서는 데이터가 된다. 결제의 편의와 사생활 보호 사이에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편리해지는 것도 아니다. 앱 인증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장애인, 외국인, 통신환경이 불안정한 지역 주민에게‘현금 없는 매장’은 효율이 아니라 배제일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의 성패는 가장 빠른 이용자가 얼마나 편해졌는지가 아니라, 가장 느린 이용자도 기본적인 금융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현금은 비효율적인 과거의 유물이면서 동시에 비상시 작동하는 공공 인프라다. 정전이나 재난, 전산장애 때 별도의 기기 없이도 사용할 수 있고 계좌가 없는 사람도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현금 없는 사회를 준비한다는 말은 현금을 서둘러 없애자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결제의 속도와 현금의 복원력을 함께 설계하자는 뜻이어야 한다.

앞으로 돈은 더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카드 뒤의 예금, 앱 안의 포인트, 프로그램 가능한 예금토큰처럼 형태는 다양해진다.

이때 소비자가 확인할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이 돈을 발행하고, 무엇으로 가치를 보장하며, 장애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는가. 같은‘1원’처럼 보여도 은행예금, 선불충전금, 포인트는 법적 성격과 보호장치가 다를 수 있다.

현금이 사라진 자리를 안전하게 채우는 것은 화려한 앱이 아니다. 언제든 교환된다는 신뢰, 장애 때 작동하는 대체 수단, 소외되는 사람을 위한 접근성, 데이터 사용에 대한 통제권이다.

미래의 돈이 더 편리해질수록 우리는 더 기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내 화면에 보이는 숫자는 누구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위기에도 지켜지는가.

필자 소개: 김주상은 전자상거래와 기술경영을 기반으로 디지털자산과 미래금융을 연구하는 IT컨설턴트다. 2013년 비트코인의 전자상거래 화폐 가능성을 연구했으며, 암호화폐·NFT 제공 시스템 관련 등록 특허(2023)와 저서로는 ‘100년 만에 부의 기회가 왔다(2021)’가 있다.

*외부 글은 <아이뉴스24>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영록 기자(rogiya@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