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경기도 파주시가 지방정부 소유 공공부지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 중소기업에 직접 공급하는 새로운 공공에너지 사업에 착수했다. 공공시설의 유휴공간을 발전 자원으로 활용하고 생산된 전력을 지역기업이 장기간 안정적인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면서 기존 ‘전력 판매형’ 공공 태양광 사업에서 한 단계 나아간 지역 에너지 순환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지난 12일 문산정수장에서 ‘파주 공공 재생에너지 1호 발전소’ 준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전력 생산·공급 체계 가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손배찬 시장을 비롯해 사업 관계자와 전력 수요기업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지방정부가 확보한 공공부지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지역 내 기업과 직접 전력구매계약(PPA·Power Purchase Agreement) 방식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시는 전국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이 같은 구조의 공공 재생에너지 공급모델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문산정수장 부지에 들어선 1호 발전소는 설비용량 1148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한국전력에 단순 판매하는 기존 공공 태양광 사업 방식과 달리 직접 PPA를 통해 파주시 소재 중소기업에 공급된다.
전력을 공급받는 기업은 ㈜삼성특수브레이크, 선일금고제작, ㈜스페이스톡, 신도산업주식회사, ㈜씨.앤.씨, 한울생약㈜, 주식회사 현진 등 7곳이다. 이들 기업은 장기간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전력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국내외 거래 과정에서 요구되는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 확보에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공급가격이다. 시는 이번 직접 PPA 전력 공급가격을 킬로와트시(kWh)당 130원으로 책정했다. 시는 국내 직접 PPA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태양광 발전단가를 kWh당 150원 이하로 낮추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 상황에서 시가 이보다 낮은 공급가격을 적용하면서 공공부지를 활용한 재생에너지 사업의 가격 경쟁력을 실제 사업모델로 구현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낮은 공급단가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공공부지 활용과 행정비용 절감이 자리하고 있다. 민간 태양광 사업은 발전부지 확보 과정에서 토지 임차료나 매입비용이 발생하고 주민 민원과 인허가 등 사업 초기 단계에서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될 수 있다. 반면 이번 사업은 기존 공공시설 부지를 활용하고 지방정부가 민원 대응과 행정절차를 직접 담당하면서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 부담을 줄였다.
발전소 운영과 전력 공급에는 지방공기업인 파주도시공사가 참여한다. 공공이 사업 운영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발전 수익과 에너지 공급 효과가 외부로 빠져나가기보다 지역기업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도 기존 민간 중심 발전사업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전력 공급계약을 장기간 고정가격으로 설계한 것도 특징이다. 참여기업에는 향후 30년 동안 kWh당 130원의 고정가격이 적용된다. 국제 에너지가격이나 전력시장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고 기업이 장기적인 에너지 비용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특히 제조업을 비롯해 전력 사용량이 많은 중소기업에는 전기요금과 에너지 가격의 불확실성이 생산원가와 경영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기간 일정한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에너지 비용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탄소배출 감축 대응에도 활용할 수 있다.
수출기업의 RE100 대응 측면에서도 이번 사업의 의미가 적지 않다.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에 참여하는 협력업체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확대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도 에너지 전환을 경영 과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자체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거나 초기 투자비용 부담으로 재생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직접 PPA 역시 발전사업자와 수요기업 간 계약조건과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진입장벽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시는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지방정부가 공공부지를 제공하고 발전 인프라를 구축한 뒤 지역기업을 수요처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업이 직접 발전시설을 구축하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장기간 공급받을 수 있도록 공공이 플랫폼 역할을 담당하는 셈이다.
기존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의 태양광 사업이 공공청사나 유휴부지 등에 발전시설을 설치한 뒤 생산된 전력을 한국전력 등에 판매해 수익을 확보하는 방식에 집중됐다면 파주 모델은 생산된 전력을 지역기업의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에서 그치지 않고 ‘공공부지 확보→발전시설 조성→지역 내 전력 생산→지역기업 공급→기업 RE100 이행 지원’으로 이어지는 지역 단위 에너지 순환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지방정부가 에너지 생산자와 지역 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까지 맡는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공공 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이를 수도권에서 구현하는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 모델로 보고 있다. 지역의 공공자산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이를 소비하도록 함으로써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지역 내부에 최대한 남기는 방식이다.
지역기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고 지방정부는 별도의 대규모 민간부지 개발 없이 기존 공공시설의 유휴공간을 에너지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지방공기업이 운영에 참여하면서 공공성과 사업 지속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도 갖췄다.
향후 사업 확대 여부는 추가적인 공공부지 확보와 기업 수요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시는 문산정수장 1호 발전소를 시작으로 도로 비탈면과 자전거도로 등 현재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공공공간을 재생에너지 생산시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는 적합한 부지를 단계적으로 발굴해 공공 재생에너지 2·3·4호 발전소를 순차적으로 조성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 필요한 지역기업의 참여 범위도 확대할 계획이다. 향후 발전시설이 늘어나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규모가 확대되고 공급 가능한 기업 수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 시장은 “공공 재생에너지 1호 발전소는 지방정부가 생산한 전력을 지역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하고 수도권형 에너지 지산지소를 실현하는 뜻깊은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관내 기업들이 RE100 이행과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업과 시민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공에너지 체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은 지방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산업정책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사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특히 공공부지를 활용한 낮은 발전비용과 장기 고정가격, 지역 중소기업 직접 공급이라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경우 재생에너지 전환에 상대적으로 대응 여력이 부족했던 중소기업의 부담을 공공이 보완하는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시는 문산정수장 1호 발전소의 운영성과와 기업의 전력 사용 효과 등을 토대로 후속 발전소 사업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공공 유휴부지를 에너지 생산기지로 전환하고 그 성과를 지역기업의 비용 절감과 수출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는 파주시의 공공 재생에너지 모델이 향후 지방정부 주도의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파주=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