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경환 기자] 전남 동부권 의료 최일선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순천지역 종합병원장들이 국립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을 촉구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이번 요구는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차원을 넘어 실제 중증·응급환자와 필수의료 환자를 진료하는 지역 종합병원장들이 의료현장의 경험과 책임을 바탕으로 공동 입장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성가롤로병원 박명옥 원장,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 정재원 원장, 순천한국병원 김원 원장, 순천중앙병원 송영웅 원장, 순천제일병원 안상호 원장은 12일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현장의 한 목소리, 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순천시 종합병원장과 임직원은 의료현장의 경험과 책임을 바탕으로 정부와 전남광주특별시에 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증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현실 매일 마주한다”
병원장들이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전남의 의료 현실이다.
이들은 전남이 의과대학 부재와 의료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특히 중증·응급 및 필수의료 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 현실을 의료현장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대 설립 문제가 단순한 지역개발이나 대학의 외형 확장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접근성과 의료인력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병원장들은 정부가 지역의대 신설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전남 국립의대 설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의과대학의 입지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특정 지역의 취약성, 지역 간 배분 논리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어느 지역에 의학 연구와 치료가 필요한지, 어디에서 의사를 교육하고 지역에 정착시킬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순천·여수·광양 중심 전남 동부권, 하나의 광역 생활권”
순천지역 종합병원장들은 전남 동부권의 인구와 산업구조 역시 의대 설립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전남 동부권은 순천·여수·광양을 중심으로 경남 서부권까지 연결되는 인구·산업 밀집 광역 생활권이라는 것이다.
특히 여수와 광양의 국가 핵심 산업시설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화학사고와 산업재해에 대응할 전문 의료체계와 연구 기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반적인 지역의료 문제를 넘어 대규모 국가산업시설이 밀집한 전남 동부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요구로 풀이된다.
소아환자부터 응급환자, 암 등 중증·희귀질환까지 지역 안에서 치료할 수 있는 의료인력 양성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 병원장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순천에는 의과대학을 뒷받침할 의료기반 갖춰져 있다”
병원장들은 순천에 이미 의과대학 교육과 임상실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의료기반이 갖춰져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성가롤로병원은 권역응급의료와 중증환자 치료를 담당하고 있으며,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은 산업재해 환자의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고 있다.
순천한국병원과 순천중앙병원, 순천제일병원 역시 전문성과 진료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의 건강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즉, 순천대 의대 설립은 대학 하나를 새롭게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역 종합병원의 의료 인프라와 대학의 교육·연구 기능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역의료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천대 의대-5개 종합병원 연계하면 ‘교육→수련→정착’ 가능
이번 공동성명에서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순천대학교 의과대학과 지역 종합병원의 연계 가능성이다.
병원장들은 순천의 종합병원이 의대생들이 다양한 환자와 질환을 경험할 수 있는 임상교육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순천대학교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의료기관의 기능을 연계할 경우 중증·응급의료, 산업재해와 재활, 필수의료를 아우르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천대 의대가 설립될 경우 지역 병원들도 의대생의 임상교육과 실습, 의료인력 교육·수련, 필수의료 인력 양성과 지역 정착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결국 ‘지역에서 의사를 교육하고, 지역 병원에서 임상 경험과 수련 기회를 제공하며, 다시 지역의료 현장에 정착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공동성명의 핵심 메시지다.
“동·서부권 의료 여건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라”
5개 종합병원장은 정부와 전남광주특별시에 세 가지 사항을 공식 촉구했다.
첫째, 전남 동·서부권의 의료 여건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인구와 중증의료 수요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동부권 의과대학 설립을 결정할 것을 요구했다.
둘째, 지역에서 의사를 양성하고 정착시킬 수 있도록 의과대학과 지역 종합병원이 연계된 의료인력 양성체계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셋째, 전남 동부권 주민들이 지역에서 중증·응급·필수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립순천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을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성명은 단순히 “순천에 의대를 달라”는 지역적 요구와는 결을 달리한다.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지역 의료기관들이 현재의 의료 공백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의과대학과 기존 의료기관을 연결해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지역에 정착시키는 구조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담겼기 때문이다.
특히 순천·여수·광양을 하나의 광역 의료생활권으로 바라보고 국가산단의 산업재해와 화학사고, 중증·응급환자 및 필수의료 수요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향후 순천대 의대 설립 논의에서 중요한 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 논리 아닌 ‘환자의 생명과 의료현실’로 판단해야
이번 공동성명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의대 입지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점이다.
지역 간 나눠 갖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실제 의료수요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의사를 어디에서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지, 배출된 의료인력을 어떻게 지역에 정착시킬 것인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요구가 행정기관이나 정치권이 아닌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종합병원장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전남 동부권의 의료 공백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험해 온 의료현장이 순천대 의대 설립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향후 국립의대 설립 논의에서도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광주=이경환 기자(khlee@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