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국가가 도입한 교통복지정책의 비용을 언제까지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떠안아야 하는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이 가파르게 늘면서 20년 가까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무임수송 손실 국비 보전’ 문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같은 무임수송이라도 코레일 관리 구간은 국가로부터 손실을 보전받는 반면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자체 부담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도 더욱 커지고 있다.
대구교통공사는 지난 11일 서울·부산·인천·광주·대전교통공사 등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 노·사 실무자들이 참여한 공동협의회를 열고 하반기 무임수송 손실 국비 보전 법제화를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번 공동협의회의 초점은 단순한 재정지원 요구가 아니다. 무임수송을 국가적 교통복지정책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른 비용 역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운영기관이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제도적 틀을 만들자는 데 방점이 찍혔다.
◆5년 만에 손실 3300억원 늘었다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배경에는 급증하는 무임수송 비용이 있다.
전국 6개 운영기관의 무임수송 손실액은 2020년 4456억원에서 2025년 7754억원으로 불과 5년 만에 약 1.7배로 불어났다. 금액으로 따지면 3298억원 증가한 셈이다.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데이터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25년 21.2%에서 2030년 25.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4년 뒤면 국민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65세 이상이 되는 셈이다.
도시철도 무임수송제도는 1980년 도입된 국가 차원의 교통복지정책이다. 노인복지법 등에 따라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이 운임 면제 혜택을 받고 있다.
문제는 정책은 국가가 만들었지만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손실을 보전할 명확한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수도권에서 도시철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레일 관리 구간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무임수송 손실을 국비로 보전받고 있다.
같은 국가 교통복지정책을 수행하면서도 운영 주체에 따라 국가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구조인 셈이다.
◆안전투자까지 압박…“복지와 안전의 문제가 됐다”
무임수송 손실 문제는 이제 운영기관의 단순 적자 문제를 넘어 도시철도 안전투자 여력을 압박하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노후 전동차와 시설물 교체, 안전설비 확충 등에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마다 증가하는 무임수송 비용을 운영기관이 계속 부담하면 재정 운용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기혁 대구교통공사 사장이 이번 공동 대응에서 ‘안전투자 재원’을 직접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사장은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해 온 국가적 교통복지제도지만 그 비용을 운영기관이 부담하고 있어 안전투자 재원 확보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7대 국회부터 발의·폐기 반복…이번엔 문턱 넘을까
무임수송 손실 국비 보전 논의는 새로운 의제가 아니다.
관련 도시철도법 개정안은 제17대 국회 이후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국회 임기 만료 등으로 폐기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이전과 다소 다르다.
2025년 11월 도시철도 무임손실 국비 보전 법제화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을 조기에 달성했고, 현재는 국가의 무임손실 보상 근거를 강행규정으로 명시한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6개 운영기관은 이번에는 단순한 요구에 머물지 않고 객관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국회를 설득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공동으로 ‘도시철도 무임수송제도 지속가능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대한교통학회가 오는 10월까지 진행하는 연구에서는 국내외 대중교통 공공서비스의무(PSO) 제도를 비교·분석하고 운영기관의 재정 상황과 적자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한다.
무임수송이 가져오는 사회적 가치와 비용편익(B/C)도 분석한다.
특히 국가·지방자치단체·운영기관 사이의 재원분담 방식을 시뮬레이션해 현실적인 비용 분담 모델과 단계별 로드맵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연구 결과는 향후 국회 정책토론회를 통해 공론화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도시철도법 개정안의 입법 논거로 활용한다.
◆‘노사 공동전선’도 눈길
이번 움직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노사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 악화가 경영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시설 안전과 근로환경, 시민 서비스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는 데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결국 쟁점은 ‘무임승차를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적 복지정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비용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부담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지키면서 도시철도의 재정 건전성과 안전투자 능력까지 확보하려면 국가와 지방정부, 운영기관 사이의 책임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김기혁 사장은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 운영기관이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재원분담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국비 보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