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수현 기자] 이제 우리 사회가 노동을 바라보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
지난 6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주 52시간제와 관련해 "일하려는 의지를 제도가 막아서는 안 된다"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현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노동정책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 건강권과 휴식권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 취지와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또 다른 질문도 던져야 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선택까지 국가가 막아야 하는가.'
노동현장에는 생계를 위해 더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있다. 더 많은 경험과 소득을 얻고 싶은 청년도 있고,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개발(R&D) 인력도 있다. 산업과 직무, 개인의 사정이 제각각인데 모든 노동현장을 하나의 근로시간 기준으로 묶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본업에서 추가 근로를 통해 소득을 늘리고 싶어도 여의치 않으면 대리운전이나 배달, 택배, 퀵서비스 등 부업을 선택하는 노동자도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보호가 취약한 노동시장으로 추가 노동을 이동시키는 현상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노동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선택권을 넓히는 것도 노동정책이 고민해야 할 영역이다.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 규제의 무조건적인 폐지가 아니다. 획일적인 규제를 현실에 맞는 유연한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일할 수 있고, 쉬고 싶은 사람은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 노사가 합의한다면 일정 범위에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반도체·AI·바이오 등 첨단산업과 R&D 분야에는 업무 특성에 맞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전제는 분명하다.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추가 근로에 대한 적정한 보상과 연속휴식 보장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추가 근로를 원하지 않는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실질적인 선택권도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강제된 획일성'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유연성'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처한 경쟁 환경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반도체와 AI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기술 경쟁은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술과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산업과 직무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의 선택권까지 제약할 수 있다.
근로시간 유연화가 기업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시각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청년에게는 더 많은 경험과 일할 기회를, 숙련 노동자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생계를 위해 더 일해야 하는 노동자에게는 제도 안에서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은 노사관계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입법 취지와 함께 실제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경영활동과 투자, 일자리 창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권리는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 동시에 제도 시행 과정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거나 산업현장의 법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기업의 책임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지속 가능한 일자리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노란봉투법도 성역으로 남겨둘 이유는 없다. 시행 이후 현장의 문제와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확인된다면 전면 재개정이나 폐지를 포함한 원점 재검토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것이 반드시 일할 기회까지 제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고, 쉬고 싶은 사람은 쉴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 이 역시 노동자 중심 정책이 지향해야 할 가치다.
이제 대한민국은 노동을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확실하게 보호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선택과 노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획일적인 규제가 노동자의 선택과 대한민국의 성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일할 자유'와 '쉴 권리', 그리고 '노사의 자율성'이 함께 보장되는 노동개혁. 그것이 민생을 살리고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대구=이수현 기자(lljjww2222@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