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앞에서 '고려아연' 콕 집은 러트닉…美이 주목한 '제련기술'

트럼프 앞에서 '고려아연' 콕 집은 러트닉…美이 주목한 '제련기술'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 나선 미국…74억달러 프로젝트 직접 언급
美 자원·인프라에 韓 제련기술 결합…한미 경제안보 협력 모델로

[아이뉴스24 양길모 기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고려아연을 직접 언급했다.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프로젝트 크루서블 쳇GPT 이미지화 [사진=챗GPT]

미국이 고려아연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제련·정제 분야에서 고려아연이 수십년간 축적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광업계 관계자들과 가진 원탁회의에서 “핵심광물은 국가안보의 문제”라며 미국에서 채굴하고 가공·정제해 제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러트닉 장관은 고려아연의 74억달러 규모 미국 핵심광물 제련소 프로젝트를 주요 공급망 투자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미국이 원하는 건 ‘광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해 7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2025.7.25 [사진=연합뉴스]

미국은 리튬·구리 등 상당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채굴한 광석을 실제 산업에 사용할 수 있는 금속과 소재로 만드는 제련·정제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광산에서 원료를 반도체·배터리·방산 등에 사용하려면 광석을 고순도 금속과 소재로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려아연은 울산 온산제련소를 기반으로 아연·연·동 등을 생산하면서 복잡한 원료에서 여러 금속을 동시에 회수하는 기술을 축적해왔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에서는 아연·연·동·은을 비롯해 안티모니·인듐·비스무트·텔루륨·팔라듐·갈륨·게르마늄 등 미국이 지정한 핵심광물 11종을 생산할 계획이다.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 등은 반도체와 방산, 통신·에너지 산업에 활용되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광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하나의 제련소에서 여러 핵심광물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美 자원+韓 기술’…프로젝트 크루서블의 경쟁력

고려아연 핵심 광물 미국 제련소 [사진=고려아연]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핵심은 미국이 가진 자원과 산업 인프라에 한국의 제련·정제 기술을 결합한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내 기존 아연제련소와 관련 광산 등을 확보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기존 시설과 인력을 활용할 수 있어 신규 제련소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것보다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기존 제련소에 쌓여 있는 부산물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온산제련소에서 축적한 자원순환 기술을 미국 현지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미국에 공장을 하나 짓는 해외 투자와는 성격이 다른 셈이다. 미국의 자원·시장·정책 지원과 한국의 제련·정제 기술을 결합해 핵심광물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에 투자자로 참여하고, 대형 인프라 인허가 신속처리 제도인 ‘FAST-41’ 대상으로 지정한 것도 이 같은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미 협력, 반도체·배터리에서 핵심광물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두번째)이 미국 통합제련소 부지를 둘러보는 모습 [사진=고려아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미 산업협력의 범위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에서 핵심광물과 제련·정제라는 공급망의 앞단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미국이 자국 내에서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광산뿐 아니라 이를 소재로 바꿀 기술과 생산시설이 필요하다. 한국 역시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가 중요하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AI와 반도체, 배터리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핵심광물의 전략적 가치도 커질 수밖에 없다. 러트닉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고려아연을 직접 언급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결국 미국이 필요한 것은 땅속에 묻힌 광물만이 아니라 그 광물을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 등에 쓸 수 있는 소재로 바꾸는 기술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광물자원을 보유한 반면 실제 산업에 사용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드는 제련·정제 역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검증된 기술을 가진 동맹국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시장·정책 역량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넘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길모 기자(dios102@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