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행정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문서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시민이 겪는 문제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책 환경이 복잡해지고 시민의 행정 수요가 세분화되면서 지방정부에도 과거와 다른 업무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기존의 수직적인 의사결정과 반복적인 보고, 부서별로 단절된 업무 체계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행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공직사회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과도한 보고자료 작성과 형식적인 회의, 부서 간 책임 떠넘기기는 정책 실행 속도를 떨어뜨리는 대표적인 비효율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시민을 만나고 정책을 설계해야 할 공직자가 반복적인 자료 취합과 보고서 형식을 다듬는 데 상당한 시간을 사용한다면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기도 양주시가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행정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나선 배경이다. 시는 ‘시민주권 대전환, 경기북부 중심 양주’를 시정 비전으로 내걸고 행정의 중심을 형식과 절차에서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 성과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조직혁신을 본격화하고 있다.
방향은 명확하다. 불필요한 업무는 줄이고 필요한 논의는 깊게 하며 한번 결정한 사안은 끝까지 실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회의 운영부터 보고체계, 부서 간 협업, 사후관리, 정보 공유, 직원 소통에 이르기까지 행정 전반의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있다. 단순히 회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공직사회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만들며 그 결과를 시민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 변화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시정의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회의 체계다. 지방정부의 간부회의는 정책 방향을 공유하고 부서 간 현안을 조정하는 핵심 수단이지만 반복적인 실적 보고와 지시사항 전달에 머물 경우 오히려 실무자의 부담을 키우고 조직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시는 기존 월 2회 운영했던 전체 간부회의를 월 1회로 조정해 매주 목요일 시장과 부시장이 교대로 주재하던 티타임 방식의 회의를 실·국·소장이 주요 현안을 직접 논의하는 ‘실국소장 회의’로 개편했다. 회의 횟수는 줄이되 논의의 밀도와 의사결정의 효율은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부서별 상황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조정이 필요한 사안과 여러 부서가 함께 해결해야 할 현안 신속한 정책 판단이 필요한 과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회의의 목적 역시 ‘보고를 마치는 것’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바뀐다. 간부회의를 단순한 정보 전달 공간이 아니라 시정 현안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의사결정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체 간부회의의 성격도 보고형 회의에서 ‘문제해결형 토론 회의’로 전환한다. 그동안 행정회의에서는 각 부서가 준비한 내용을 차례로 보고하고 간부가 확인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회의자료는 많았지만 정작 부서 간 토론과 대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고 직원들은 회의 때마다 반복되는 자료 취합과 수정에 상당한 행정력을 투입해야 했다.
앞으로는 단순한 실적 나열을 줄이고 시정 차원에서 해결이 필요한 핵심 현안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하나의 정책에 교통과 도시계획, 복지, 예산, 안전 등 여러 분야의 판단이 동시에 필요한 경우 부서별로 검토 문서를 주고받기보다 관련 책임자들이 한자리에서 쟁점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방식이다.
부서 간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상급자의 일방적인 지시로 정리하기보다 각자의 실무적 근거와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만드는 데 무게를 둔다. 이를 통해 정책 검토 시간을 단축하고 부서 간 정보 격차와 책임 공백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공직사회의 오랜 숙제로 꼽혀 온 보고자료 작성 방식도 바뀐다. 정책의 내용보다 문서 구성과 표현, 서식 수정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투입되고 여러 단계의 보고 과정에서 동일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수정되는 비효율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시는 실·국·소별 주요 현안을 보고할 때 장문의 서술식 자료를 최소화하고 핵심 사항을 한 장에 정리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현재 상황과 핵심 문제, 결정이 필요한 사항, 대안, 향후 일정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복잡한 수치나 사업 추세는 표와 그래프 등 시각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보고자료의 분량보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고 명확하게 담겼는지를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문서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 공직자의 업무시간을 현장 행정과 정책 기획에 돌리는 데 의미가 있다. 보고서 작성에 사용하던 시간을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 현장을 확인하는 데 활용한다면 행정의 속도와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무는 것도 행정혁신의 중요한 축이다. 현대 행정의 문제는 하나의 부서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 건의 민원에도 도로와 교통, 환경, 건축, 복지 등 다양한 분야가 얽혀 있고 시민이 겪는 문제는 행정조직의 업무 구분과 관계없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행정 내부에서는 복합민원이 발생하면 자신의 부서 소관인지부터 따지는 관행이 반복돼 왔다. 업무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소관 업무에만 얽매일 경우 시민이 여러 부서를 오가거나 업무가 계속 이관되는 이른바 ‘행정 핑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는 실국소장 회의를 부서 간 현안을 조정하는 실질적인 협업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자신의 담당 업무가 아니더라도 시정 전체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여러 부서가 얽힌 현안은 회의 과정에서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조정하도록 한다.
특히 장기간 부서 간 이견으로 추진이 지연됐던 사안은 특정 부서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관련 부서가 공동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할 계획이다. 조직의 관점이 아니라 시민의 관점에서 행정을 바라보겠다는 의미다.
회의 이후의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한 사후관리도 강화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대안이 나오더라도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회의의 의미는 크지 않다. 시는 주요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을 단순한 지시사항으로 남겨두지 않고 담당 부서와 추진 일정, 협업 부서,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관리체계를 구축한다.
시민 생활과 직결된 주요 현안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 점검해 결정사항이 실제 현장에 반영되도록 하고 사업이 지연되면 원인을 확인한 뒤 필요할 경우 관련 부서가 다시 모여 해결책을 찾도록 한다. ‘△결정 △실행 △점검 △보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 공직사회에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다는 구상이다.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도 한층 강화한다. 시는 주요 시정 현안을 논의하는 업무회의를 청내 방송과 온라인 시스템 등을 통해 실시간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주요 회의는 참석자 중심으로 진행돼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은 최종 결과만 전달받는 경우가 많았다. 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논의됐고 왜 특정 대안이 선택됐는지 충분히 공유되지 않으면 실제 집행 과정에서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시는 주요 회의 과정을 공유해 정책의 배경과 결정 과정을 조직 전체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정책의 맥락을 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부서 간 정보 공유도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의사결정 과정의 공개는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결정권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효과도 갖는다.

행정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정보 단절 역시 개선 대상이다. 부서별로 가진 정보와 사업 추진 상황이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으면 동일한 자료를 반복해서 생산하거나 이미 검토한 내용을 다른 부서가 다시 확인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시는 주요 현안의 추진 상황과 결정 배경을 관련 부서가 공유하고 업무 연관성이 높은 정책은 기획 초기부터 해당 부서가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정책 결정 이후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책 설계 단계부터 협업하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면 정책 검토 기간이 단축되고 시민에게 제공되는 행정서비스의 대응 속도도 높아질 수 있다.
행정혁신은 간부회의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는 제도와 절차를 바꾸는 것 못지않게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변화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직원과의 대화’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민원을 처리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직원들은 업무 과정의 불합리와 비효율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는 구성원이다. 시는 직원들이 겪는 현장 애로사항과 조직문화에 대한 의견, 업무 개선 아이디어를 직접 듣고 개선 가능한 사안은 제도와 실제 업무 방식에 반영할 방침이다.
직급과 부서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일방적인 지시 중심의 조직에서 ‘아래에서 위로 아이디어가 흐르는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조직 내부 소통이 활발해지면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책임감이 높아지고 이는 시민을 대하는 행정서비스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는 단순히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안마저 여러 단계의 결재와 보고를 거쳐야 한다면 신속한 행정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시는 실무 중심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각 부서와 담당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고, 현장에서 해결 가능한 사안은 가급적 현장 중심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절차와 과정은 간소화하되 결정의 근거와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지는 구조를 통해 속도와 책임성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시가 추진하는 행정혁신의 성패는 시민이 실제 변화를 체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회의시간이 줄거나 보고서 분량이 짧아지는 것 자체만으로는 혁신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를 통해 민원 처리 기간이 줄고 여러 부서에 걸쳐 있던 시민 불편이 신속하게 해결되며 필요한 정책이 빠르게 현장에 적용돼야 의미가 있다.
시가 행정 내부 구조를 바꾸는 최종 목적 역시 시민 체감도를 높이는 데 있다. 직원들이 보고자료 작성에서 확보한 시간을 현장에 투입하고 부서 간 협업으로 정책 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며 결정된 과제를 끝까지 관리한다면 그 효과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행정 효율화는 단순히 예산과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문제 해결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줄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직사회의 업무 관행과 조직문화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회의 횟수를 줄이고 보고서 형식을 간소화하는 것보다 구성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협업과 수평적 소통을 일상적인 업무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가 될 수 있다.
시는 민선 9기 동안 이러한 변화를 일회성 시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조직문화로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불필요한 형식과 절차는 지속적으로 걷어내고 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정책과 현장에는 행정 역량을 더욱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정덕영 시장은 “행정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격식과 형식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불필요한 절차를 걷어내야 현장과 시민의 목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며 “공직자가 보고서 작성에 매달리기보다 현장을 한 번 더 찾고, 부서와 직급의 벽을 넘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을 때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이 행정의 변화를 실제 생활에서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의 실행력과 속도를 높이고 조직 내부의 혁신이 더 나은 행정서비스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방행정의 경쟁력을 최종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시민이다. 회의가 얼마나 길었는지, 보고자료가 얼마나 화려했는지가 아니라 시민이 제기한 문제가 얼마나 빨리 해결됐고 필요한 정책이 얼마나 정확하게 현장에 도달했는지가 기준이 된다.
시가 추진하는 변화 역시 결국 그 지점을 향하고 있다. ‘보고하는 행정’에서 ‘해결하는 행정’으로, ‘부서 중심 행정’에서 ‘시민 중심 행정’으로의 전환이다. 형식과 관행을 걷어내고 실행과 협업, 소통을 앞세운 양주시의 행정혁신이 공직 내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양주=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