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직전 1조원이 넘는 금융부채를 자본으로 돌리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 재평가까지 더해 장부상 자본이 약 1조9300억원 늘었지만 실제 현금 유입이나 채권단 변제 재원과는 무관한 회계 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회생을 준비하면서 재무위기를 장부상으로 가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23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신청 엿새 전인 지난해 2월 26일 한국리테일투자와 1조1566억원 규모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조건을 변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리테일투자는 MBK가 홈플러스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이다.
RCPS는 상환권을 보유자가 가지면 발행사 재무제표에서 부채로 분류된다. 반대로 발행사가 상환 여부와 시기를 결정할 수 있으면 자본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한국리테일투자는 당시 상환권을 홈플러스에 넘겼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는 한국리테일투자가 원할 때 갚아야 했던 1조1566억원을 회사가 원할 때만 상환할 수 있는 자금으로 바꾸고 전액을 자본으로 재분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는 2023년과 2024년 RCPS와 관련해 각각 약 358억원을 상환하고 관련 이자비용을 손익에 반영했다. 회사의 영업력이나 이자 지급 능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회생 신청 직전 재무제표에서는 1조원 넘는 금융부채가 사라진 셈이다.
홈플러스는 토지 측정 방식도 변경해 재평가잉여금 7740억원을 자본에 반영했다. RCPS 재분류와 토지 재평가로 늘어난 자본은 총 1조9306억원이다. 그 결과 부채비율은 500%로 낮아졌다. RCPS를 금융부채로 유지했다면 부채비율은 2609%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두 회계 조정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단순 계산하면 홈플러스의 2025년 2월 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4449억원이 된다. 공시된 자본총계 1조4857억원에서 RCPS 재분류액과 토지 재평가액 1조9306억원을 제외한 결과다. 두 조정이 없었다면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는 의미다.
금융권은 계약 변경 시점에 주목한다. 홈플러스가 RCPS 조건을 바꾼 날은 신용평가업계가 신용등급 하락 계획을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2025년 2월 25일 바로 다음 날이다.
검찰은 MBK가 공식 통보 전부터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고 회생 신청을 준비했는지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생 준비가 계약 변경보다 먼저 시작됐다면 이번 조치가 완전자본잠식을 막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홈플러스는 적법한 회계처리라고 반박했다. 회사는 올해 초 "RCPS의 회계상 자본 전환은 외부 회계법인의 객관적인 검토를 받아 적법하게 실행됐다"며 "우선주의 자본 전환과 토지 자산재평가는 정당한 회계처리"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실제 RCPS 자본 전환일이 계약 변경일과 다른 2025년 2월 27일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신용등급 하락 이후 자본 전환이 이뤄져 전자단기사채(ABSTB) 발행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토지 재평가 역시 실제 가치와 장부가치의 차이를 해소해 이해관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다만 한영회계법인은 올해 공개된 홈플러스 감사보고서에 '의견거절'을 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감사인은 RCPS 재분류와 토지 재평가가 합리적인지를 판단할 충분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회생 신청 직전 재무위기를 가렸다는 지적을 받는 핵심 수치가 외부감사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채권단의 판단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법정 최후 시한인 오는 9월 4일까지 연장했다. 채권단은 향후 영업으로 창출할 현금과 처분 가능 자산, 청산가치, MBK의 추가 자금 투입 규모 등을 토대로 회생계획안을 판단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RCPS 재분류와 토지 재평가로 늘어난 1조9306억원이 실제 홈플러스에 들어온 돈도, 채권단 변제 재원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부상 자본 확충과 실질적인 회생 가능성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2000억원 규모 긴급운영자금(DIP)이 들어오는 즉시 임시휴업 중인 핵심 점포 67곳을 다시 열 계획이다. 매출 비중과 회전율이 높은 생필품을 우선 확보해 현금흐름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