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광주 군공항을 선택한 배경에는 넓은 부지와 함께 일할 사람에 주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장 용지 확보도 중요했지만, 젊은 연구개발(R&D) 인력과 생산직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정착할 수 있는 주거·교육·교통 환경이 투자 결정의 핵심 요소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6일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광주 군공항을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로 확정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광주 군공항이 호남권 후보지 가운데 가장 적합한 입지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기업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정주여건이었다. 반도체 공장은 한 번 들어서면 수십 년간 운영되는 산업이다. 연구개발 인력과 생산직, 협력사 직원 등 수천명이 함께 이동하는 만큼 공장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후보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광주 도심 외곽 지역도 살펴봤지만, 젊은 직원과 가족들이 생활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 군공항은 KTX 광주송정역에서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또 순환도로로 이동하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학교, 학원가, 의료시설 등이 가까워 정주여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항 이전 후 관련 규제가 풀리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설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9일 광주공항에서 만난 한 주민은 "공항 일대의 낮은 아파트 단지들도 재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고경영진 역시 정부와 만날 때마다 정주 여건 조성을 강조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는 지난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직원들이 주말부부가 될 수도 있어서 정주여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 부회장도 회의에서 정주여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공장 부지 자체의 경쟁력도 다른 지역보다 높았다는 평가다. 광주 군공항은 약 250만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공항 부지 특성상 이미 평탄화가 이뤄져 일반 산업단지보다 부지 조성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국유지가 대부분이어서 토지 확보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삼성전자에 광주는 낯선 지역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광주사업장에서 에어컨과 냉난방공조(HVAC) 등 생활가전을 생산하며 오랜 기간 지역 협력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광주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처음인 만큼 정주여건과 인력 확보를 더욱 면밀하게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대영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선임연구위원(전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본부장)은 "첨단 반도체 공장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산업"이라며 "우수 인력을 지방으로 보내려면 교육과 주거, 의료, 문화시설 등 정주여건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이 충남 아산 탕정에 디스플레이 사업장을 키울 당시에도 임직원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 설립을 지원했고, 이후 주거단지와 생활 인프라가 함께 조성되면서 지금은 삼성의 대표적인 지방 사업장으로 자리 잡았다"며 "광주도 공장만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당장 광주에 공장을 짓기보다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P5·P6를 건설 중이며 내년부터는 용인 국가산업단지에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 용인 첫 번째 팹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이후 최소 3~4개 팹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 기간 동안 광주 군공항 이전과 전력·용수, 도로, 주거 인프라 구축을 마무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다음 투자 사이클에 맞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구상으로 보고 있다.
다만 가장 큰 과제는 군공항 이전이다.
현재 광주 군공항은 무안군 망운면을 예비 이전 후보지로 지정하고 이전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가 무안군의 불참으로 한 차례 연기됐고, 주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 국방부 협의 등 여러 절차가 남아 있다.

특히 무안군은 정부 지원과 광주 민간공항 이전 등 선결 조건 이행을 요구하고 있어 협의 과정이 사업 추진 속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군공항 부지 내 탄약고 등 일부 시설만 먼저 이전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이전 절차를 마무리한 뒤 본격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장기적인 시장 상황도 변수다. 현재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메모리 시장이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광주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대 중반에도 지금과 같은 수요가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인 만큼 미래 수요 변화까지 고려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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