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국내 정유사들이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석유제품 가격을 일시에 인상하기로 합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2024년부터 가격 정보를 공유해 왔으며, 전쟁 발발을 계기로 약 14조2000억원 규모의 가격 담합을 벌인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6일 HD현대오일뱅크 법인과 가격결정부서 직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SK에너지와 담당 직원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에 따라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상호 입금가 정보를 공유하며 가격을 결정해 왔다. 양사는 상대 회사의 가격 정보를 확인할 담당자를 별도로 지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양사의 전체 담합 규모를 14조2000억원으로 파악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이들의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인상한 효과까지 포함하면 약 26조원 규모에 달한다고 봤다.
검찰은 전쟁 발발 당시 국내 정유사들이 상당한 양의 원유를 이미 비축하고 있어 가격이 급등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4개사가 일제히 입금가를 큰 폭으로 올렸다고 판단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입금가를 공지하면 주유소가 이를 반영해 소비자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인 만큼 정유사의 가격 인상이 최종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구속된 HD현대오일뱅크 가격결정부서 부서장은 과거 'SK에너지 가격 정보 담당자'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8월 부서 책임자로 발탁돼 전쟁 직후 가격 폭등 합의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국내 정유 시장에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가격을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추종하거나 참고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가격 담합이 전체 유가 시장의 가격 상승을 촉발했다고 봤다.
다만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가격 담합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두 회사의 가격 추종이 경쟁질서를 교란하는 전형적인 의식적 병행행위에 해당하지만 공정거래법상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쟁사와 직접 가격을 협의했다는 뚜렷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이 확보한 가격결정부서 대화방에서는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등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또 검찰은 유가 상승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여 4개 정유사 모두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4대 정유사는 자영주유소와 전량구매 방식으로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을 맺은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을 구매할 경우 보너스 카드 중지 등 혜택을 박탈하거나 거액의 위약금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제한한 혐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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