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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끝...판결문 너머 남겨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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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변호사 신간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가사 사건' 36년...이혼 사례 43건으로 살펴본 가족의 상처
'가족심리상담' 전문 이서원 교수 공저...'치유'의 온기 담아
그래도 희망은 가족...'미숙함' 인정하고 서로 보듬어야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화창한 평일 어느 오후 2시 쯤, 법원 정문을 향해 한 젊은 남성이 담배를 뻑뻑 태우며 걸어간다. 신경질적으로 잔뜩 찌푸린 미간 사이로 분노와 권태, 자책이 복잡하게 어른댄다. 몇 미터 뒤 역시 짜증과 피곤함이 그대로 얼굴에 패여 있는 젊은 여성이 따라간다. 또 그 뒤를, 어린애 둘이 쫓아간다. 큰 남자애는 초등학교 2학년, 작은 여자아이는 유치원생 쯤 됐나보다. 엄마 아빠와는 정반대로 그냥 해맑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댄다. 여자가 빽 소리를 지르자, 서둘러 따라붙는다.

이명숙 변호사,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사진=이명숙 변호사]
이명숙 변호사,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사진=이명숙 변호사]

어느 가정법원에서나 쉽게 목격되는 이혼의 풍경이다. 가정의 해체,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 중에서도 어린 자녀들은 평생 가슴을 짓누를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 오죽하면 판결문에서 이들을 '사건본인'이라고 할까.

이혼에 이르는 원인과 과정은 천차만별이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드라마 최강자로 군림했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KBS 2TV)만 봐도 안다. "어쩜 저럴 수 있느냐"며 시청자 대부분이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로 알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들이 기반이다. 그나마 너무 충격적이어서 드라마에서조차 담을 수 없는 사건들이 부지기수였다는 사실은 유명한 뒷얘기다.

‘사랑과 전쟁’ 단골 솔루션 위원으로 유명했던 이명숙 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는 36년 넘게 이혼 사건을 다뤘다. 40년 가까이 이혼 가정과 함께한 셈이다. 그러나 이 변호사를 이혼 전문 변호사로만 봐서는 안 된다. '도가니 사건', '조두순 사건', '칠곡·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건', '세월호 사건' 등 굵직한 사회적 사건에서 피해자 곁에 섰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 경찰청 4대악 근절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학술과·법령·정책 등 총체적인 면에서 '아동 학대'의 문제점을 꿰뚫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기자가 오랫동안 보아 온 이 변호사는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유형 중 단연 'T'형(사고형)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그 조차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소송에서 이긴 당사자라고 할지라도 '가정 해체' 피해자로서의 삶이 계속됨을 보아야 할 때다. 판결문은 가정의 해체를 최종 확인해주지만,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변호사는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다. 이혼을 비롯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이 치유되지 않은 갈등과 상처에서 시작된 일이고 보면, 이는 심각한 모순이다.

이명숙 변호사,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사진=이명숙 변호사]
신간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사진=미디어북스]

최근 나온 책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웁니다'(미디어북스)는 이런 모순의 순환을 끊기 위한 지침서라 할 만하다. 이 변호사가 가족심리상담 전문가인 이서원 서강대 교수와 함께 펴냈다. 이 교수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가족심리상담 전문가로, 서강대 겸임교수이자 한국분노관리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률사무소 '나우리' 부설 '나우리가족상담소' 소장이자, 이 변호사의 남동생이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자칫 차갑고 딱딱한 판례집이 될 뻔했던 책에 이 교수가 온기를 불어넣어 줬다고 했다.

책에는 이 변호사가 직접 만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담겼다. 모두 43개의 사건일지가 6장에 나뉘어 실렸다. 제1장 '불륜은 사랑이 아니다'에서는 가볍게 시작한 외도가 어떻게 가정을 파괴하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제2장 '돈으로는 가족을 살 수 없다'에서는 돈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했다. 제3장과 제4장은 가정폭력을 다룬다. 부부와 부모라는 이름으로 엮인 가족이 때에 따라 얼마나 무서운 구조적 흉기가 될 수 있는지를 고발했다. 제5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처한 여성들의 피눈물을 담았다.

저자들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에는 가족이 곧 희망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제6장의 주제가 그래서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다'이다. 이 변호사와 이 교수가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문제의 핵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오랜 세월 이혼 가정을 살피면서 찾은 문제의 핵심은 '미숙함'이었다. 미숙한 남편과 아내는 부부관계가 사랑만이 아니라 제도와 책임 위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미숙한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과 사랑을 주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 미숙함이 비극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언젠가는 가정법원에서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오기를, 대신 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지켜주는 세상을 꿈꾼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법정에 오기 전, 가족 안에서 상처를 알아보고 멈춰 세우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 책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 오늘도 가정법원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이 변호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최기철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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