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유럽 대륙이 거대한 ‘열돔(Heat Dome)’에 갇혔다. 프랑스 파리의 기온이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전역에는 연일 최고 단계의 폭염 경보가 발령 중이다.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철도가 휘어지는 등 도시 전체가 거대한 프라이팬처럼 달아올랐다.
이를 두고 에어컨 설치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유럽이 지금이라도 당장 에어컨을 대량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다. 올여름 유럽 전역에서 에어컨과 선풍기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과연 에어컨이 이번 기후 재앙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에어컨은 당장의 해결책은 되겠는데 지구를 더 빠르게 대우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

유럽이 에어컨 도입을 주저해 온 배경에는 수백 년 된 역사적 건축물 보존이나 막대한 전기요금 같은 현실적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이고 생태적 관점에서 볼 때 기계식 냉방의 대폭 확대는 도시 환경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고 간다.
에어컨은 실내 열을 흡수해 ‘실외로 뿜어내는’ 장치다. 대단지 아파트와 오피스텔 외벽에 수천, 수만 대의 실외기가 동시에 가동된다고 상상해 보자. 실내 온도를 1도 낮추기 위해 실외 온도는 그 이상으로 치솟기 마련이다.
도시 내부의 온도가 주변 지역보다 급격히 높아지는 ‘도시 열섬 현상’을 극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시킨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면서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냉각수 부족으로 가동을 줄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수천만 대의 에어컨이 한꺼번에 켜지면 전력수요는 감당할 수 없는 정점에 이른다.
대규모 정전(Blackout)의 위험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급증하는 냉방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기를 다시 돌려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유럽의 폭염은 지금 당장 에어컨 설치가 답은 될 수 없다.
도시 곳곳에 녹지 공간을 넓혀 열을 흡수하고 건물의 단열과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개조하는 ‘패시브 쿨링(Passive Cooling)’ 중심의 인프라 전환이다. 패시브 쿨링은 전기나 가스 등 기계적 에너지를 쓰지 않고 건물의 구조, 자재, 자연 현상만을 활용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친환경 냉방 방식이다.
당장 생명이 위험한 병원이나 요양원, 학교 등 필수 시설에는 냉방 장치가 시급히 지원돼야 하겠는데 개인의 편리함만을 위해 에어컨에 의존하는 방식은 기후 위기 앞에 임시방편일 뿐이다.
유럽은 산업혁명 등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온실가스를 국가적 차원, 나아가 유럽연합(EU) 측면에서 줄이고 기후위기 책임에서 선뜻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생존할 수 있는 ‘기후변화 정책’을 서둘러 마련할 때이다. ‘입에 발린 기후정책’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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