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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가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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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ponsibility에서 Accountability로

[아이뉴스24 김도은 기자] 영어 단어 가운데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Accountability다.

이 단어의 뿌리는 account에 있다. 오늘날 account는 계정, 회계, 거래내역이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원래는 계산하고 기록하며 설명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진=윤대기 변호사/ 전 인천국제공항공사 상임감사위원]

여기서 accountant는 숫자와 거래를 기록하고 설명하는 사람(회계사)이 되었고, accountable은 자신의 행동과 결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accountability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명하고 정당화하며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수용하는 책무를 뜻한다. 결국 Accountability의 핵심에는 ‘설명’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우리가 흔히 책임이라고 번역하는 Responsibility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갖는다. Responsibility는 맡은 역할과 의무를 뜻한다.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권한을 부여받아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상태다. 조직에는 수많은 책임자가 존재한다. 부서장이 있고 담당자가 있으며 최종 결재권자가 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맡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책임이다.

그러나 Accountability는 단순히 일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결과가 기대와 달랐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설명에 대해 사회적 평가를 받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는 Responsibility의 부재보다 Accountability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조직에는 책임자가 많지만 설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이 잘되면 모두가 공로를 이야기하지만, 실패하면 누구도 앞에 나서지 않는다.

담당 부서는 존재하지만 설명하는 주체는 사라진다. 책임은 분산되지만 책무는 증발한다. 대형 사고나 정책 실패가 발생할 때 국민이 느끼는 분노 역시 단순히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회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정책에는 언제나 오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을 때 시민은 실수가 아니라 무책임을 경험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단순한 다수결 제도가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이 권한을 위임하고,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다시 국민 앞에 그 결과를 설명하는 순환 구조가 작동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선거는 권한을 부여하는 절차이지만 Accountability는 그 권한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권한은 위임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Accountability는 위임할 수 없다.

공직자는 권한을 행사할 Responsibility를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권한의 행사에 대해 시민에게 설명할 Accountability를 진다.

설명할 수 없는 권력은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거버넌스는 단순히 유능한 행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에게 설명 가능한 행정을 의미한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기업의 존재 목적을 이윤 창출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오늘날 투자자와 소비자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가보다 어떻게 이익을 냈는가를 묻는다.

노동자와 지역사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진다. 지속가능경영과 ESG가 등장한 배경 역시 결국 Accountability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신뢰는 성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명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변화는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알고리즘이 채용을 결정하고, 금융기관이 대출 여부를 판단하며, 의료와 행정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기술은 점점 정교해지지만 시민들의 질문은 오히려 더 근본적이 되고 있다.

누가 결정했는가.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가. 오류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기술이 발전할수록 Accountability의 가치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진다. 인간은 결과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정당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은 신뢰받기 어렵다.

좋은 사회는 책임자를 많이 두는 사회가 아니다. 책임 있는 설명이 가능한 사회다. Accountant가 숫자를 설명하는 사람이라면, Accountable한 공직자는 권력의 행사를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Accountability란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제도와 문화의 총체다. Responsibility가 역할의 언어라면 Accountability는 신뢰의 언어다. Responsibility가 조직 운영의 출발점이라면 Accountability는 민주주의의 완성 조건이다.

우리는 흔히 묻는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러나 성숙한 민주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다. “누가 시민 앞에 나와 설명할 것인가.” 설명 없는 책임은 권위주의로 흐르기 쉽고, 책임 없는 설명은 공허한 변명에 불과하다. 책임과 설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신뢰가 만들어진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을 갖는 데 있지 않다. 그 권력과 권한을 시민 앞에서 설명할 수 있는 데 있다. 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 역시 성과를 내는 데만 있지 않다. 그 성과가 어떤 과정과 가치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데 있다. 결국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그리고 공동체도 신뢰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신뢰는 책임에서 시작되지만 설명을 통해 완성된다.

* 이 기고는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천=김도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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