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음주운전 사고를 낸 운전자가 동승자의 '바꿔치기' 제안에 동의해 동승자가 운전한 것으로 꾸몄다면, 운전자 역시 '범인도피 방조죄'로 처벌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d36467a7254d0.jpg)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범인도피방조 및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관 13명 중 8명의 의견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범인도피 행위를 돕거나 허용하는 것이 방어권을 넘어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대법원 판례는 범인 스스로의 범인도피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먼저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 자백을 촉진·강화 또는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 대신 형사처벌을 받을 허위 범인을 수사기관에 내세우는 행위, 즉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방어권 남용에 해당해 범인도피교사·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고 했다.
재판부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허위 범인에 의해 진범이 가려지고 허위 범인에게 수사력이 집중되는 등 수사 방향 자체가 왜곡돼 진범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 집행 등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인의 이런 행위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를 법적으로 용인하면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형사사법 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도 어긋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같은 맥락에서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 중 방조를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범행 가담자를 공범으로 처벌할 것인지의 판단은 가담 형태가 아니라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범인도피방조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결국 가벌성이 높은 범인도피교사행위까지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적정한 형벌권 행사에까지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그동안 대법원이 방어권 남용 법리를 선언하고 유지해 온 배경과 그 근본취지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흥구·오경미·서경환·권영준·박영준 대법관 등 5명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파기환송 의견을 제시했다. 범인을 위해 제3자가 허위 자백이나 진술을 한 경우, 범인이 이를 '방조'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 대법관 등은 "형법상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비호하는 범인도피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일 뿐 스스로 도피행위를 한 범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다"라면서 "원칙적으로 범인을 범인도피죄의 공범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사행위는 타인을 타락시켜 새로운 범죄자를 창출하는 데에 고유한 행위반가치가 있고, 대법원도 이런 교사의 특수성 때문에 예외적으로 방어권 남용 법리를 적용해온 것"이라며 "그렇다면 범인의 방조행위까지 예외적인 방어권 남용 법리를 확대 적용해 범인도피죄의 처벌 영역을 넓히는 것은 형법 151조 1항의 문언이나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2023년 5월 전북 전주 완산구 자택 인근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을 추돌했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7%로 면허취소 수준으로, A씨는 현직 교통경찰이었다.
사고 직후 동승했던 B씨가 나서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A씨가 이를 받아들여 자리를 바꾼 뒤 보험회사에 신고했다. A씨는 보험사 직원에게 B씨가 운전했다고 말했다. B씨는 사고 접수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 진술하고 음주 측정을 받았다. 위기를 넘기는가 했던 두 사람은 상황을 미심쩍어 했던 보험사 직원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덜미를 잡혔다. 검찰은 B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A씨를 범인도피방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B씨에게는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A씨만 항소했지만,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A씨가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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