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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기의 문화인사이트]‘허수아비’는 어떻게 오래 남을 드라마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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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ENA 범죄스릴러 ‘허수아비’는 사회적 역할을 했다. 오래 남길만한 드라마였다.

‘허수아비’ 최종화(12회)가 방송된 지난 5월 26일 다음날인 27일은 ‘허수아비’ 재방송과 ‘나는 솔로’ 31기의 영숙과 순자가 경수를 두고 벌이는 예기치못한 흥미로운 쟁탈전이 벌어져 ENA가 전 매체 1일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ENA가 KBS, MBC, SBS, tvN, JTBC의 시청률을 제치다니. 방송가의 새로운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허수아비 [사진=ENA]

하지만 최종회 시청률 8.122% 등 단순히 수치상의 의미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콘텐츠는 영화 ‘살인의 추억’과 드라마 ‘시그널’ 등이 있었지만 진범이 확정된 2019년 이후 만들어진 첫 작품이라는 점이 우선 거론되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게 된 데에는 ‘그것이 알고싶다’를 4년간이나 연출하며 감각이 좋기로 유명한 박준우 감독과 ‘모범택시’ 이지현 작가의 순발력에 힘입은 바 크다. 이들은 실제 사건에 기반하면서도 가상을 적절하게 사용해 공감을 유도했다. 현실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데 허구를 이용해 재미를 보는 드라마들과는 달리 실제 사건에 철저하게 바탕을 두었다.

2003년작 ‘살인의 추억’은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토종형사(송강호)와 과학과 통계를 믿는 경찰대 출신 유학파 형사(김상경)를 동원해도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남는다. ‘시그널’도 현재의 형사가 그 시대를 추억하지만, 진범이 잡히기 전인 2016년에 방송됐기 때문에 새롭게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은 범인이 자백함으로써, 실체가 밝혀졌다. 범인 이춘재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강간 및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중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임을 털어놓는다. '허수아비'에서도 교도소 벽에는 "자백은 용서의 시작이며, 용서는 구원의 문을 연다.(요한일서 1장 9절)"라고 쓰여있다.

사이코 패스 이춘재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털어놓으며 경찰을 가지고 노는 듯 했다. 경찰과 검찰은 엉뚱한 희생자를 만들며 수사를 마무리했던 것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은 특진도 하고 담당 검찰도 승승장구했다. 담당 경찰중에는 수사를 지휘하던 검사 시영(이희준) 편을 들면서 30년 뒤 치안감으로 경기동부경찰청창까지 오르는 박대호(류해준과 박원상)도 있다.

‘허수아비’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건의 실제 배경인 ‘화성’은 ‘강성’이 된다. 박준우 감독은 기범의 친구이자 강성 농기구수리점에서 일하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임석만(백승환 성인:전석찬)과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의 피해자 김현정을 모티브로 한 윤혜진(이아린)의 유가족을 만나면서 제작 의지가 더욱 굳혀졌다. 하지만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는 투자와 제작이 쉽지 않았다. 경찰의 아들까지 다루는 게 부담스럽다. 어떻게 만들어도 “잘못된 수사의 회고록”(이지현 작가의 표현)처럼 보일 것이다.

다리를 저는 임석만의 실제 모티브인 윤성여 사건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라도 받아냈지만, 윤혜진의 실제 인물인 화성 초등학생 김현정은 사건화가 되지도 못했다. 관련 경찰의 부정에 공소기간 만료,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허수아비’라는 제목은 절묘하다. “허수아비가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허수아비인 척하는 범인의 이야기가 있었고, 범인이 밝혀진 7회 후에는 범인을 잡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권력이 허수아비일 수도 있고, 범인을 끝까지 잡지 못한 강태주가 허수아비일 수도 있다"(이지현 작가)

이춘재 사건은 엉뚱한 범인을 잡고 마무리가 된 채 수사파일은 캐비넷 안에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 수사에 가담했지만 뭔가 의심을 품고, 잘못된 수사가 아닐까 하고 죄책감을 가지며 성찰해보는 한 명의 인물로 가공된 캐릭터가 강태주(박해수)다.

'허수아비'의 박준우 감독(왼쪽)과 이지현 작가 [사진=ENA]

이지현 작가는 “검찰의 반성은 없었다. 태주를 통해 주고픈 메시지는, 누구나 옳은 선택을 하는 건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르지 않는 선택을 이어간다면 허수아비로 남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태주처럼 인간으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강태주는 임석만을 범인으로 특정한 결정적 단서인 방사성 동위원소 검사의 오류와 자신의 착오를 인정했다. 분석 결과 티타늄과 나트륨 비율이 높은 게 범인과 일치하며 "범인은 땀을 많이 흘리는 노동자로, 철을 다루는 용접공과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으로 범인을 잘못 짚은 것. 태주는 ‘경찰이 묻은 진실을 살인범이 밝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뒤늦게 각성했지만, 그 용기가 매우 중요하다. 제작진은 이번 작품을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공권력의 폭력이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태주의 동생이자 기범의 연인으로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강순영(서지혜)과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결핍과 뒤틀린 경쟁심이 자리하고 있는 검사 차시영(이희준) 등 캐릭터들을 통해 가부장 시대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일 수 있는 여성 중년시청층을 공감하게 만든 것도 성공의 이유로 보인다.

‘허수아비’ 제작진은 이춘재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과 그 가족에게 위로와 위무를 전해주고 싶었는데, 얼마만큼 그런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충분히 그런 사회적 기능을 했다고 본다.

연쇄살인범과, 그에게 입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시스템에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 작용하며, 그런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논의하게 한 것도 '허수아비'가 거둔 적지 않은 성과다.

/서병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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