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1년간 산업계 노사 갈등의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 정년 연장과 기본급 인상, 근로시간 단축이 주요 쟁점이었다면 최근에는 성과급과 이익 배분 문제가 노사 협상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이 촉발한 변화다.

SK하이닉스가 쏘아올린 공…재계를 뒤흔드는 포탄돼
시작은 SK하이닉스였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 노사 협상을 통해 향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활용하는 성과급 체계를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현재와 같은 AI 반도체 호황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후 AI 시장 성장과 함께 HBM 수요가 폭증했고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성과급 지급 상한까지 폐지되면서 1인당 수억원대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SK하이닉스처럼 성과급 제도 변경을 회사에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삼성전자는 가전, 스마트폰, 반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사업구조를 지닌 만큼 순수 메모리 기업인 SK하이닉스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도체와 완제품 부문 간 실적 격차가 커 노사 갈등이 노노 갈등으로 번졌다. 삼성전자 노사는 두 달간 극심간 갈등 끝에 영업이익의 10.5%를 반도체 부문에 대한 특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했다.
노사의 성과급 갈등은 삼성전자를 넘어 판교 정보기술(IT) 업계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의 13~15%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임금을 몇 % 올릴지가 쟁점이었다면 이제는 영업이익의 몇 %를 성과급으로 배분할지가 핵심이 되고 있다"며 "AI 산업 성장으로 기업 이익 규모가 커지면서 노사 갈등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노사와 직접 마주앉은 고용노동부 장관
정부의 대응도 과거와 달랐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 위기로 번지자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이 상황을 점검하며 대응에 나섰다.
특히 김영훈 장관은 삼성전자 노사의 최종 협상을 직접 주재하며 중재에 나섰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노조 집행부를 번갈아가며 만나며 양측 입장을 조율했다.
삼성전자 노조 한 관계자는 김 장관과 만남 후 "협상 과정에서 답답함이 많았는 데, (김 장관은) 노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이례적인 장면으로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사기업 내부의 임금·성과급 협상은 노사 자율 영역으로 분류되게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자 한국 수출과 증시를 떠받치는 핵심 기업이라는 점이 정부 개입의 배경으로 꼽힌다. 반도체 생산 차질이나 장기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속에 삼성전자 노사는 약 5개월간 이어진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으로…경영계 우려↑
경제계의 우려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회원사에 '노동조합의 기업 이익 배분 요구에 대한 경영계 특별 권고'를 배포했다.
경총은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하는 방식을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고용 확대 등에 활용돼야 하는 경영 자원인 만큼 단순 배분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주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 배분하는 것은 임금 문제를 넘어 경영 의사결정에 해당할 수 있다"며 "주주들의 문제 제기나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계의 긴장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대통령실과 여권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 환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어서다.
초과이익 환수 논란의 경우, 어느 수준의 이익부터 '초과'로 볼 것인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쟁점으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처럼 업황 변동성이 큰 업종의 경우 특정 시기 급증한 이익을 구조적 이익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대규모 선행 투자와 기술 개발 위험을 감수한 기업 이익을 사후적으로 환수하는 방식은 시장경제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호황으로 기업 실적이 급증하면서 성과급과 이익 배분 문제가 새로운 노사 갈등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며 "이재명 정부 1년 동안 산업계 노사 관계를 가장 크게 바꾼 변수도 결국 AI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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