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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기의 문화인사이트]'모자무싸'고혜진 역 강말금, 이 시대 최고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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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지난 24일 5.3%(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다보면, 나도 생각보다 내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모자무싸'속 고혜진 역의 배우 강말금. [사진=SLL]

사실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자체가 자기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위 아닌가. 한국에서 유난히 SNS가 활성화되는 이유도 자기 드러내기(존재가치 인정받기)와 남 훔쳐보기 속성이 합쳐진 시너지가 유독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회 말미에, 20년만에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황동만(구교환)이 신인감독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형, 나 상 받았어. 나 이제 검색되는 남자야“라고 말했을 때에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검색 되는 남자=존재가치’라는 블랙 유머로 빵빵 터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타짜’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못지 않은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모자무싸’에는 감독으로 데뷔 못해서 불안하고, 그래서 불안을 장광설로 배설하고, 감독으로 데뷔하고도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봐 여전히 불안하고, 책(시나리오)이 안써져 불안한 청춘들이 8인회에 모여있다.

나는 방송계, 영화계, 음악계를 모두 오랫동안 취재해봤는데, 가장 자기들끼리 노는 곳이 영화판이다. 결혼도 그들끼리 하고 심지어 재혼도 주위에서 다 아는 그들끼리 해결하는 것도 봤다. 영화판은 네트워킹이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일의 속성 자체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박해영 작가가 영화계 모임 8인회를 설정한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불안한 청춘들이 상처와 열등감으로 계속 변화 없이 살아나간다면 참 봐주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말로써 '참교육'을 시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를 닦은 스님의 죽비가 아니라 서로 레벨이 같은 사람인데, 현실적인 조언으로 상대를 굴복, 성장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극 중 영화 제작사 ‘고박필름’의 대표 ‘고혜진’ 역을 맡은 강말금이다.

나는 고혜진이 이 시대 최고의 조력자라고 생각한다. 20년간 영화감독 데뷔를 못하고 있었던 황동만(구교환)이나 '자격지심 끝판왕' 남편 박경세(오정세)를 사람 만들어준 것도 모두 고혜진이다.

강말금은 인물들의 불안과 충돌이 극대화되는 순간마다 냉철한 통찰과 흔들림 없는 실행력으로 원칙의 무게와 어른의 품격에 빠져들게 했다. 매회 바른말, 옳은 말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일침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업(영화)과 사람에 대한 투박하지만 깊은 애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강말금은 제멋대로 날뛰며 8인회의 모임장소인 ‘아지트’의 평화를 깨뜨리는 황동만에게 단호하게 ‘아지트 출입금지’ 조치를 내림으로써 황동만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황동만을 향해 오랜 시간 쌓인 불만을 폭발시키는 박경세와 황동만의 ‘혐관’ 케미도 마무리 짓게 했다.

강말금이 열등감에 흔들리며 폭주하는 ‘남편’ 박경세를 참교육 시키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당신 밑바닥 안 보려고 내가 죽기 살기로 데뷔시킨 거야”라며 박경세의 오만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내가 황동만 가슴에 대못까지 박아가며 출입 금지 시킨 게, 황동만 하나 꼴 보기 싫어서겠어? 황동만 때문에 미쳐 날뛰는 당신이 쪽팔려서지”라며 남편에게 눌러온 분노와 부끄러움을 단호하게 환기시켰다.

강말금이 경세가 창작자로 좀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본 후 경세에게 이혼을 제안했지만, 박경세가 후배 여자 공동작가 박정민(정민아)를 해고시키고, “잘못했다. 1등은 못해도 3등은 하겠다"라고 한 것도 결국 경세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도록 만들어줌으로써 이들 부부는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물론 강말금은 나중에 남편 경세에게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강말금이 입으로만 영화를 찍던 동만을 데뷔시키며 한 말은 “링 위에 올라가서 한번 얻어터져 봐. 못 도망가”였다. 도파민이 나오는 파격적인 ‘참교육’이었다.

영화 제작자로서 고혜진은 올바르다. 혜진은 마재영 감독(김종훈)의 시나리오에 여성 작가의 필체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두 번째 작가를 물었지만 마재영이 본인 크레딧만 올리려 하자 “성공을 목전에 둔 남자는 눈멀기 좋아, 악인이 되기도 쉽고”라고 말했다,

속물이 되어버린 영화사 최 대표(최원영)를 향한 고혜진의 일갈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사람에 대한 진심에서 비롯됐다.

강말금은 제작사 대표로서의 가치관과 직업적 윤리를 동시에 담아내며, 진심 어린 말의 온도로 ‘어른 여자’ 고혜진의 품격과 깊이를 완성했다.

강말금이 연기한 고혜진 캐릭터는 우리 곁에 꼭 있었으면 하는 ‘진짜 선배’이자 ‘리더’이며 ‘최고의 조력자’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보다, 불안해하고 나태해진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이런 동료나 선배를 주변에 두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잔소리는 듣기 싫지가 않다. 요즘 이 정도의 조언을 해주는 친구가 어디 있나. 자기계발서에 적혀있는 말을 해주는 게 조언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고혜진 같은 조언은 불가능하다.

8인회도 모두 자기 일을 하지만, 선인과 악인과는 관계없이 흔들리고 약간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무가치함에 매몰된 사람을 각성하게 만들어주는 ‘여자 어른’이 고혜진이다.

부산 출신의 배우인 강말금은 서울 출신보다 불리할 수 있는데도 발성이 매우 좋다.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많은 훈련이 있었을 거다.

부산과 붙어있는 김해 출신의 송강호도 그렇다. 경남 고성 출신인 고(故) 연극배우 추송웅도 그랬다. 부산에서 올라와 MBC 선배들에게 사투리 쓴다고 많이 혼 난 이경규는 배우 추송웅을 롤모델로 삼고 발성을 연습했다.(경상도 출신 배우는 두 부류다. 송강호, 강말금처럼 정면돌파가 있고, 부산 출신인 장혁, 부산 창원 거창에 살았던 강동원처럼 말을 잘 안하는 배우가 있다. 후자는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가 됐다. 나중에 장혁이 입을 열고 보니 수다쟁이였다.)

강말금은 이런 고혜진을 정확한 발성으로 대사가 착착 귀에 꽂히게 해주었다. 낮고 차분한 톤도 절제돼 보여서 좋다. 강말금은 많은 작품에서 호연을 보였지만 좋은 작품, 사람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박해영 작가가 쓴 이번 작품을 연기할 때에는 더욱 빛났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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