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고 나와 주변 환경을 느끼고 경험하는 주관적 상태인 ‘의식’은 인간에게만 유일한 것일까.
동물, 인공지능(AI), 태아, 오가노이드(유사 장기)까지 다양한 존재가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단순 정보 처리를 의식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자는 거다. 이 주장들의 과학적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구가 발표됐다.
의식적 경험과 정보 처리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데 정보 처리 과정을 마치 의식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두 과정을 엄격히 구분해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 연구들이 ‘의식이 있다, 없다’는 답을 내는 데 집중해 왔다면 이번 연구는 그 답이 도출되는 방식 자체가 과학적으로 타당한지를 다시 검토하자는 거다.
![인공지능도 의식이 있을까. '있다, 없다'는 답을 얻기 전에 그 판단을 하는 과정이 과학적 바탕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GEMINI]](https://image.inews24.com/v1/0a207fc05b4b7c.jpg)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직무대행 김영덕)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하콴 라우 연구단장, 캐나다 몬트리올대 빈센트 타셰로-뒤무셸교수, 미국 뉴욕대 조세프 르두 명예교수 공동 연구팀은 현 의식 연구의 방법론적 한계를 지적하고 더 엄밀한 의식 연구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안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AI도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학계와 산업계, 언론 전반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일부 AI 기업과 연구자들은 최신 인공지능 모델이 주관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감응성(sentience, 외부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을 넘어 기쁨·고통 등 주관적 경험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지닐 가능성을 언급하며 AI의 권리와 복지 문제까지 논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인공지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뉴욕 동물 의식 선언(New York Declaration on Animal Consciousness)'은 포유류와 조류뿐 아니라 곤충과 연체동물까지도 의식적 경험을 지닐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했다. 태아의 의식이 언제 시작되는지, 실험실에서 배양된 뇌 오가노이드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동물 복지, AI 윤리, 생명윤리와 맞닿아 있다. 특정 존재가 의식을 가진다면 이를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주장들이 실제로 어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현재 의식 연구에서 사용되는 많은 실험 방법들이 ‘의식적 경험’과 ‘일반적 지각·인지 처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방법론적 한계에 주목했다.
기존 실험 결과들은 다양한 의식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돼 왔는데 이 결과들이 실제로 의식적 경험을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보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한계가 동물·AI·태아·오가노이드 등 서로 다른 대상의 의식 여부를 판단할 때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때로는 상충되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현재 의식 연구가 과거에 반복됐던 문제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19세기 말 초기 심리학에서는 인간과 비슷한 행동 반응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동물의 의식을 추론하는 등 충분한 실험적 검증 없이 강한 주장들이 확산됐다.
이는 이후 행동주의(behaviorism)의 등장과 함께 의식 연구가 수십 년간 학계에서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0년대 들어 의식 연구가 다시 활성화됐는데 양안경합(binocular rivalry) 등 본래 시각 지각 연구를 위해 개발된 실험 방법을 활용하면서 의식적 경험과 일반적 정보 처리를 실험적으로 명확히 구분해내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양안경합이란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제시했을 때 두 이미지가 동시에 보이는 게 아니라 한쪽 이미지와 다른 쪽 이미지가 번갈아 의식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뇌에는 두 자극이 모두 들어오는데, 실제로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의식 연구에서 널리 활용돼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신경심리학적 임상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맹시(blindsight)는 일차 시각피질의 손상으로 시각 자극에 대한 의식적 경험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실제 맹시 환자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보지 못하는 자극의 위치를 맞히거나 장애물을 자연스럽게 피해 걸을 수 있다.
반측 무시(hemispatial neglect, 뇌 손상 이후 한쪽 공간에 있는 대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증상) 환자 역시 손상된 쪽 시야의 대상을 의식적으로 보고하지 못하면서도 해당 정보가 이후 행동이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보인다.
연구팀은 이러한 사례들이 의식적 경험과 정보 처리가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두 과정을 구분해 연구할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교신저자 하콴 라우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단장은 “이번 연구의 목적은 특정 대상이 의식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주장들이 어떤 과학적 근거 위에서 도출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있다”며 “기존 연구들이 ‘의식이 있다, 없다’는 답을 내는 데 집중해 왔다면 이번 연구는 그 답이 도출되는 방식 자체가 타당한지를 다시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의식 연구의 많은 이론이 다양한 실험 결과로 지지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결과가 실제로는 의식 자체가 아니라 일반 정보 처리를 반영한 것일 수 있어 이론들이 의식을 설명한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며 “어떤 존재가 의식을 가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윤리적·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가지는 만큼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과정은 더 엄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가 의식적 경험과 일반적 정보 처리를 구분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연구 방법론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논문명: The Ethical Impasse of Current Consciousness Science)는 국제학술지 ‘뉴런(Neuron)’에 27일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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