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차세대 신약 플랫폼으로 꼽히는 TPD 기반 치료제가 미국에서 처음 허가를 받으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TPD는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찾아 세포가 스스로 분해하도록 유도하는 '유도탄' 같은 방식으로, 기존 표적치료제와 차별화된 기전을 갖는다.
![연구원이 현미경으로 세포 샘플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 [사진=SK바이오팜 홈페이지 ]](https://image.inews24.com/v1/776c74c5b0bdfc.jpg)
1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와 아르비나스가 공동 개발한 PROTAC 기반 TPD 치료제 '베파누(성분 벱데제스트란트)'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를 받았다. 적응증은 호르몬 치료 이후에도 병이 진행된 일부 전이성 유방암이다.
이번 승인은 기존 항암 치료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표적치료제가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 기능을 억제하는 방식이었다면, 베파누는 문제 단백질을 세포 안에서 분해해 제거하도록 설계되면서다.
TPD는 인체가 원래 갖고 있는 단백질 처리 시스템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세포 안에서는 수명이 다했거나 손상된 단백질에 '제거 신호'가 붙고, 프로테아좀이 이를 분해한다. 프로테아좀은 세포 내 불필요한 단백질을 처리하는 '청소 시스템'이다.
PROTAC은 이 같은 단백질 분해 과정을 질병 유발 단백질에 적용하도록 만든 TPD 기술의 한 유형이다. 질병 유발 단백질과 단백질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를 한데 끌어당겨, 해당 단백질에 제거 표식이 붙도록 유도한다. 이후 프로테아좀이 이를 인식해 분해한다.
즉 TPD는 세포 성장 등에 관여하는 단백질에 '폐기 신호'를 붙여, 세포가 스스로 해당 단백질을 없애게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 치료제가 단백질의 활성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TPD는 표적 단백질 자체를 줄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같은 특성 덕분에 TPD는 약물 효율 면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표적 단백질을 분해한 뒤에도 다른 단백질에 다시 작용할 수 있어, 기존 치료제보다 적은 용량으로도 효과를 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단백질 자체를 줄이는 방식인 만큼, 질병 유발 단백질 구조가 변해 약효가 떨어지는 내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를 두고 랜디 틸(Randy Teel) 아르비나스 대표는 입장문에서 "당사가 2013년부터 개발해온 TPD 기술의 중요한 이정표"라며 "이번 성과는 TPD 기술이 실제 임상에서 효과를 입증한 사례"라고 전했다.
업계는 베파누 FDA 승인으로 국내 TPD 개발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TPD 약물을 항체에 결합해 암세포에만 정확히 전달하는 분해제‑항체 접합체(DAC)가 주목된다. 이는 항체약물접합체(ADC)가 독성 물질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과 달리 필요한 단백질만 선택적으로 분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를 대표하는 회사로 오름테라퓨틱이 꼽힌다. 자체 DAC 플랫폼을 통해 급성골수성백혈병(AML) 등 혈액암을 겨냥한 신약 후보물질 'ORM‑1153'을 개발 중이며,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 BMS와 기술이전·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플랫폼 경쟁력을 입증했다.
SK바이오팜은 TPD 연구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분자접착제(MGD) 기반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 임상 진입을 목표로 후보물질 'SKT‑18416'을 개발 중이다. 또한 자체 플랫폼 'MOPED'를 활용해 기존 약물로 공략하기 어려운 병원성 단백질을 겨냥한 MGD 기반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GD는 PROTAC과 달리 단일 분자 구조로 표적 단백질과 E3 리가아제(단백질 분해를 유도하는 효소)를 연결한다"며 "화학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세포 투과성이 뛰어나 기존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단백질까지 겨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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