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눌 수 있는 세상은 드물다. 세상을 흑백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오히려 허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선과 악, 갑과 을로 갈라 복잡다단한 현실을 두 개의 진영으로 단순화해 사고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이해관계는 촘촘하게 얽혀 있다.

미 금주법 시대 추악한 조직폭력배로 알려진 알 카포네는 대공황 시절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자선 활동에 나섰고, 비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는 외려 여성·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을 선과 악으로 단정해 나누는 일은 애초에 무리다. 한 개인의 삶조차 이토록 모순과 복합성으로 얽혀 있는데, 하물며 기업과 산업은 얼마나 더 복잡한 이해관계와 층위를 품고 있을까.
애써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은 건 중동 사태로 촉발된 정유업계와 주유업계의 갈등을 보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 위원회는 최근 정유업계와 주유업계의 간담회를 재차 개최하고 두 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주유업계가 불공정 관행으로 지적하는 지점은 크게 사후정산제, 카드 결제 관행, 전속 계약 구조 세 가지다. 사후정산제는 정유사가 잠정가로 기름을 공급한 뒤 일정 시차를 두고 국제유가를 반영해 정산하는 방식이다. 가격이 오르면 주유소가 차액을 부담하고, 떨어지면 정유사가 이를 보전한다. 일견 정유사가 우위에 있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주유소는 이미 사후정산제 뿐만 아니라 즉시 결제 방식도 선택할 수 있어 운신의 폭이 넓다. 특히 지난 2013년 대법원 역시 사후정산제가 불공정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주유소들이 특정 기업의 기름만을 공급 받아야 하는 전속 계약 구조 역시 일방적 갑질로만 규정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적지 않다. 특정 브랜드 간판을 내건 주유소가 다른 정유사의 제품까지 함께 공급할 경우, 해당 브랜드를 신뢰하고 방문한 소비자는 의도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구조적 문제 또한 존재한다. 국내 주유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주유소가 직영주유소보다 높은 가격에 기름을 공급받는 현실, 카드 결제 관련 관행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다만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횡포를 부리는 구도로 단순화하기엔 실제 산업의 모습은 훨씬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사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마다 폭리 논란이 반복되고, 초과이익 환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 급진적인 것으로 유명한 한 정치인은 정유사들의 초과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며 관련 법안을 실제 발의하기도 했다. 같은 논리라면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축소로 손실이 발생할 때 이를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의 논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원유 수급 차질 속에 정부가 주유소 공급 가격에 상한을 두는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서 부담을 먼저 떠안은 주체가 정유업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단순히 폭리를 취하는 악덕 기업으로만 규정하는 시각은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더 취약한 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현실을 단순한 선악 구도로 재단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흐려진다. 필요한 것은 한쪽을 겨냥한 단죄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정교하게 풀어내는 균형 잡힌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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