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 시행 한 달 만에 건설현장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판단이 엇갈리면서 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같은 법을 적용하고도 지방노동위원회 판단이 상반되게 나오면서, 업계는 개별 현장마다 다른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초기인 만큼 당분간 혼선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향후 판례가 축적되고 정부 가이드라인이 구체화하면 건설현장의 책임 구조와 사업 환경도 점차 재편될 것으로 전망한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 첫날인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이 행진하고 있다. 2026.3.10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c6590d6aca2453.jpg)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에도 사용자 지위를 인정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한 뒤 3월 10일부터 시행됐다.
고용노동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9일 포스코이앤씨를 상대로 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원청 건설사가 하청노조의 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업계에서는 지노위가 안전관리와 인력 배치 등 현장 운영 전반에서 원청의 실질적 통제력을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10일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가 중흥토건·중흥건설을 상대로 낸 같은 취지의 신청을 기각했다. 타워크레인 장비 운용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감안할 때 원청의 직접적인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법 시행 한 달 만에 ‘인정’과 ‘불인정’ 사례가 동시에 나오면서, 업계는 현장 특성과 공종 구조, 계약 관계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는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향후 법 적용 범위가 건설업 전반으로 어디까지 확대될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라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코이앤씨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회사 관계자는 “노동위원회 결정을 존중한다”며 “판정문을 받은 뒤 영향과 법률적 쟁점을 검토해 필요한 후속 절차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은 개별 대응 없이 기존 업무에 집중하도록 안내하고, 교섭 등 공식 대응은 본사에서 일괄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체적인 판정 근거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사례를 건설업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건설업은 공종별 하도급과 일용직 중심의 분절적 고용 구조를 갖고 있어 산별노조의 교섭 요구에 따른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큰 업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시행령상 교섭창구 단일화가 원칙이고 노동위원회가 이를 조정할 권한도 갖고 있는 만큼, 업계가 우려하는 극단적인 혼란보다는 실무적으로 완화된 형태로 정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초기 단계라 개별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부담스럽다”며 “특히 사용자성 인정 여부에 따라 교섭 참여 범위가 달라질 수 있어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섭 요구 1000건 넘어…건설업 집중도 두드러져
교섭 요구는 시행 초기부터 빠르게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법 시행 한 달간(3월 10일~4월 9일) 집계에 따르면 산업계 전반에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는 총 1011건에 달했다. 대상 원청 사업장은 민간 216개, 공공 156개 등 총 372개소이며, 관련 인원은 약 14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건설업은 다른 업종보다 교섭 요구가 집중되는 분야로 꼽힌다. 법 시행 첫날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노조가 시공능력평가 상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97곳에 교섭을 요구한 데 이어, 플랜트·운송·타워크레인 관련 노조의 요구도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현재까지 원청의 사용자성이 최종 인정된 사례는 6건에 그친다. 상당수 사안이 노동위원회 심리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개별 판정이 현장 대응의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법무 대응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건설사들은 지노위 판단을 기다리기보다 선제적으로 교섭 절차를 밟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교섭 절차를 시작한 건설사는 9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삼정, 부강, 흥한주택종합건설, 미진건설, 덕진토건 등은 이미 교섭 대상 노조를 확정하고 후속 절차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소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 사용자성을 다투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고, 자칫 노사 갈등이 현장 점거로 이어질 경우 공기 지연 부담도 적지 않다”며 “일단 정부의 창구 단일화 절차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공사비·공기 변수로…분양사업에도 부담
건설업계에 교섭 요구가 집중되는 것은 원청과 하청, 재하청이 여러 단계로 얽혀 있는 산업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공정별로 다수의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건설현장에서는 원청이 공사 전반의 안전과 공정 관리를 맡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산업보다 사용자성 판단 이슈가 더 자주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제조업처럼 고정된 사업장이 아니라, 맨땅에서 건물이 올라갈 때까지 공정마다 주체가 계속 바뀌는 가변적 사업장”이라며 “원청이 안전과 공정 관리 전반을 맡는 구조상 어느 범위까지 실질적 통제력을 인정할지를 두고 당분간 노사 간 해석 차이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뿐 아니라 교섭단위 분리, 직고용 검토 등 이슈까지 맞물리며 대응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고용노동부 집계상 원청의 사용자성이 최종 인정된 사례는 아직 극소수에 그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노사 관계를 넘어 사업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노무 비용 증가와 교섭 절차 장기화가 공사비 상승과 공기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분양가와 정비사업 추진 속도, 신규 사업 수익성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분양시장 회복세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추가 비용 변수는 건설사들의 수익성 방어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동시다발 교섭은 제한적”…과도기 진통 불가피
정부는 시장 우려를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일 설명자료를 내고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에 따라 수백 개 노조와 동시 교섭하는 상황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시행령이 일정 부분 완충장치로 작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위원회도 일부 사업장에 대해서는 교섭단위를 분리하거나 신청을 기각하는 방식으로 조정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법 시행 초기인 만큼 단기적인 혼선은 피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연구위원은 “현재는 법 시행 초기로, 판정 사례가 쌓이면서 기준이 만들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라며 “결국 노란봉투법은 건설현장의 책임 주체를 보다 상위 단계로 끌어올리는 구조 변화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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