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KBS 1TV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16회에서는 ‘두 얼굴의 군주 2부작 - 2부 1619년 파병의 진실, 광해군’ 편이 5일 밤 9시 30분 방송된다. 프레젠터 지승현이 조선 15대 왕 광해군으로 변신해, 1619년 격동의 동아시아 한복판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조선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준 명나라의 파병 압박과 신흥 강국 후금 사이에서 위태로운 선택을 강요받았다.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낯선 전장으로 파병해야만 했던 400년 전의 딜레마는, 오늘날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대의 상황에 묵직하고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중 한국 등에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한 바 있다.
-"중립이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판이 깔린 거예요"
명나라가 요구한 파병 기일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당시 '떠오르는 변방'으로 불리는 후금의 누르하치는 조선에 참전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과연 약소국이었던 조선에게 명나라의 파병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가 존재했을까?
'관형향배(觀形向背, 형세를 잘 보고 행동하라)'는 광해군의 외교 정책을 설명할 때 흔히 쓰인다. 우리는 이를 고도의 계산된 '중립 외교'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숨통을 트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명나라와 후금 어느 쪽의 손도 온전히 들어줄 수 없었던, 애초에 중립이 불가능했던 판 위에서 조선군은 파병 길에 오른다.
급변하는 동북아의 지형 속에서 2만 조선군이 맞닥뜨려야 했던 1619년 사르후(살이호) 전투의 참혹한 진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존을 도모했던 광해군의 아슬아슬한 외교전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원군을 이끌고 떠난 도원수 강홍립은 사르후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이 누르하치군에 크게 패하자, 관형향배의 명령을 떠올리며 부하들을 데리고 후금에 투항했다.
당시의 국제 정세 분석을 위한 취재가 이어졌다. 조선군이 걸었을 법한 험준한 우모령과 압아하 등 파병 길을 따라갔다. 허투알라성 근처 '박 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박씨촌'을 찾아 강대국의 싸움터에 던져진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파병군들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본다.
-"현대인의 욕망이 불러낸 초상, 광해군"
시대에 따라 '혼군'부터 '개혁군주'까지 그 어느 왕보다 극단적인 평가를 오갔던 광해군. 우리는 왜 400년이 지난 지금,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을까. 전쟁을 억제한 실용주의적 실리 외교의 ‘공’(功). 경연을 가장 적게 하고 친국을 가장 많이 했다는 ‘과’(過). 끝내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역사에 혼군으로 뼈아프게 기록된 광해군. 현대인들이 바라는 자주적 지도자의 욕망이 투영된 '개혁군주'의 모습과 그 이면에 가려진 '폭군'이라는 두 얼굴의 엇갈린 공과 과를 냉철한 시선으로 다시 돌아본다.
-400년 전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
낡은 질서와 새로운 힘이 강렬하게 충돌하던 1619년의 동아시아는, 강대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오늘의 국제 정세와 소름 돋도록 닮아있다. 강대국의 숨 막히는 압박 속에서 중립과 국익을 동시에 좇아야만 했던 광해군의 외교는 오늘날 우리에게 과연 어떤 생존의 시사점을 줄지 살펴본다. 동시에 내부의 분열과 맹목적인 불통이 지도자와 국가의 운명에 얼마나 참혹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시대를 관통하는 뼈아픈 경고를 함께 전한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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