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요즘 내가 쓰는 글 중에는 아무런 느낌 없이 연필 가는 대로 허둥지둥 쓴 것들도 많이 있다.
글을 쓰는 자가 마땅히 흘려야 할 피를 정직하게 흘려가며 쓴 글도 있지만,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듣기 좋은 말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은 못 쓸지언정, 논설이란 주제아래 정치권 잘못이나 들춰내 비난하고 매도하는 글, 그런 글을 써 세상에 내놓다니, 심히 나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왜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우리 국민이 오랜 세월 동안 정치 권력의 거짓말에 속아왔고, 그 불신은 우리 정치 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다.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부당함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그 속에 뿌리내린 시대의 난제인 불편과 고통은 늘 힘없는 서민들에게 전가되었다. 이 부당한 현실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서 쓴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중언부언할 뿐이다.
내가, 또 무슨 말 같지 않은 헛소리를 하려고 서문부터 장황한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본시 배부른 보수의 안주(安住) 보다 배고픈 진보의 진취적 행동을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은 굳이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 가릴 것이 그 인간성 내면을 보면 다 똑같다는 느낌이다.
지금 대구시장 자리를 놓고 두 진영에서 설치는 것을 보면 이것은 페어 플래이가 아니다.
전부 자신들의 욕심만 가득하다.
대구시장 자리가 그렇게 좋은가?총리를 지낸 사람도, 6선 국회의원도, 여전사라는 사람도, 심지어 대구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某의원 등 등. 그야말로 점입가경의 생지옥처럼 보여 시장 출마에 관한 비난성의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런 글들을 쓰게 된 경우도 나의 적극적 선택보다 소극적 선택에 따라 쓴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저편보다 이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편, 이편 다 싫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 싫어함도 대부분은 어떤 냉철한 논리에서가 아니라 감정적인 반발에 가깝다.
국민이 정치를 부인하지 않고 정치가 국민을 억압하지 않는 사회, 사회가 경제를 단죄하지 않고 경제가 사회를 경멸하지 않는 사회. 부자가 서민을 업신여기지 않고 서민이 국민을 받들지 않는 공정한 사회, 그러면서도 조화롭고 풍요하게 발전하는 사회를 위해 말하고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욕심에 따른 비루한 나 자신의 변명에 불과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정치 현안에 여ㆍ야가 서로 옳다는 주장만 난무하니 바라보는 국민들만 헛갈려 우왕좌왕하고 있는 현실에서, 올바른 사항을 쓰려 노력하고 쓰지만 이 역시 잡문이기에, 다만 거기에 조금이라도 묻어 있을 내 고난과 헤맴의 자취에 의하여 그 부끄러움이 사하여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내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부끄러움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는 주변에 널려 있다.
특히 지도자들과 정치권 주변에는 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은가. 그들은 학교 도덕 시간에는 뭘 배웠는지, 그 뻔뻔함이 글로 표현을 하기조차도 민망하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도자는 자신의 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대의에 맞지않는 행동으로 여론이 들끓는다면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 포기할 줄도 알고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그렇지 못할까. 그것도 많이 배워 알만한 사람들이 말이다. 아둔한 나는,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적합성만으로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우리는 천민이라 한다. 아무리 고관대작이면 뭘 하는가.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조차 구분을 못 하는 사고(思考)가 일상이 젖어있는 불쌍한 사람들인데. 누가 뭐래도 자신이 옳다고 우김질하며 마이웨이 하는데. 모(某)의원의 시장출마는 과욕이라는 것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본인만 아니라고 시민을 향해 우김질하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나는 이 천민 지향적 행동에는 다만 연민스럽다. 진퇴가 분명함에도 버티기로 서슴없이 자신의 몸 값을 올려 흥정하는 듯한 전임공공기관장도 볼썽사납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가치보다 하위 가치가 없다는 것과 마찮가지로 상위 가치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몰인식이 문제다.
요직에서 호의호식하다 마지막 공직을 시민봉사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출마를 한다는 모습은 정치에 물들면 다 그런가 라는 생각에 소시민으로 납득이 안 간다.
버티면 결국 야당정체성의 혼란으로 공천의 명분이 약해질 수 있다는 공론(公論)과 공천은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는 공론 (空論)이 맞부딪히며 소리를 내고 있다. 여당은 나친김에 국정과 지방 자치권을 독식하겠다며 대구를 넘다보고 있다.
야당은 콩가루 집안답게 연일 공천 잡음으로 바람잘 날이 없다. 공당인이면 소속당의 따르며 호흡을 맞추도록 배려하는 게 상식의 정치가 아니겠는가.
정권 인사들이 대구시장 자리가 요식협회나 상가번영회처럼 사인(私人)의 이익집단 같은 모습을 시민에게 비춰지고 있다.
대구시장의 자리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진 데, 시장 직책이 정권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잘나가는 고관 아류들의 물 좋은 취직자리가 아니며, 천하의 공물(公物)일진데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을 보면 그 자리가 그렇게도 좋다는 말인가. 공적 영역에 사적 사고가 섞이면 이해충돌이 생긴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 세상 흐름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많은 여론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오기로 맞서는 넉살은 공ㆍ사를 구분조차 못 하는 심히 부끄러운 행동이다.
고위직 출마자들이 숙지해 할 것이 출세는 자신의 영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올바른 공직관이다. 공직을 출세와 생계 수단 정도로 보거나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몰염치하고 천박한 사람들은 공직관을 바꿔야 되지 않겠는가. 현시점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과 규정 그게 바로 전부라는 것은 반드시 구별하여야 한다.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인물들은 이제 나는 왜 지금 이 시장 자리에 연연해야 하는가? 출마자들이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세상이 이렇고, 부끄러움은 어떻고를 운운하며 나도 이 부끄러운 글을 썼지만 그럼에도 그 부끄러움의 본질에는 다다를 수 없는 것에, 그 단어 정신의 절정에는 말하지 못하는 결함을 갖는다. 그들이나, 나 역시 억지로 하려니 되는 일이 없어 이런 소재로 글 쓰는 것조차 부끄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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