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문영수 기자] 30년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했다. 이후 계열사 CEO까지 역임하며 성공한 직장인이었던 작가는 은퇴 후 철학을 공부하며 박사 학위까지 받는다. 어느 덧 인생의 끝자락, 해가 지기 직전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뽐내는 시간인 오후 5시에 선 작가가 어둠을 맞기 전 잠시 멈춰 서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돌아본다.
허광호 작가의 글에는 소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생이 담담히 담겨 있다. 고속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족들 보다 직장이 우선이었던 세대, 민주화와 IMF를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작가를 수필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권남희 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는 그의 글을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위의 산문에 가깝다고 평한다. 작가는 굴곡진 우리 시대의 초상화를 그리는 대신 피천득의 '한약방' 같은 순박한 글을 택했다.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단순함의 미학을 택한 작가다.
그의 글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성장통을 앓던 한국사회의 중심을 관통한다. 그 속에서 작가는 한국사회의 '남자다움'을 강요 받았다. 말수는 적어야 하고 인내심이 강해야 하며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다. 그런 그의 글은 고민을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독자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느끼게'하는 방향을 택한다.
산문집에는 작가의 첫 등단작품부터 여행과 소소한 일상적 터치까지 다양한 30편의 작품이 담겼다. 한국의 남성들이 쉽사리 꺼내기 어려워하는 아버지, 어머니와의 추억을 시작으로 학창시절의 경험과 직장생활, 결혼, 출산, 그리고 여행의 경험을 풀어낸다.
특히 여행을 좋아했던 작가는 특정 장소에서의 경험을 자신의 과거 일상과 연계해 풀어내는데 탁월함을 보인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돈암동과 강남역, 명동, 성내천 제방길 등의 장소는 작가를 과거로 다시 돌려 보낸다. 폐사지 여행과 도보여행을 통해 인생의 변곡점을 되돌아보고, 해외 여행지에서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권남희 수필가는 작가의 글을 보며 '한겨울 무를 먹는 열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고 설명했다. 무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이에 따라, 그것을 먹는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허광호 작가의 작품은 무맛의 싱거움과 가벼움에서 다야한 각도의 깊이 있는 읽기를 시도한다.
권 수필가는 "감정은 있으나 노출되지 않고 평면적으로 보이나, 절제된 안정감을 놓치지 않는다"며 "성찰이 없기보다 성찰을 핑계로 남의 생각을 덧붙이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작가"라고 평했다.
최근 대기업 출신 임원들이 자서전이나 산문집을 쓰기 위해 글쓰기 강연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은 이런 수강생들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하기 충분하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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