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민지 기자] "지금처럼 임대주택에까지 '징벌적 세제'가 적용되는 구조에서는 기업이 장기 임대 공급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임대를 하면 할수록 세 부담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 그 부담은 임대료 상승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습니다."(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전세 시장이 흔들리며 기업형 임대주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에는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열어주되, 그 혜택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 완화와 보증금 안전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균형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 모델의 핵심을 한국 시장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향후 임대차 시장의 방향을 좌우할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세제·금융 적당히 풀어야 기업형 임대 시장 커진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기업 임대 모델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수익 구조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임대용 주택을 투기 대상이 아닌 영업용 자산으로 보고 세제 체계를 재설계해야 민간 자본이 유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장기 임대주택 공급이 늘고, 결과적으로 세입자 입장에서도 선택 가능한 주거 옵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임대 목적으로 제공하는 영업용 주택에조차 종부세 중과 등 세제를 적용하고 있다"며 "해외처럼 임대를 하면 할수록 세 부담을 낮춰 임대료 인상 압박을 상쇄해주는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대주택 사업은 △세금과 △금융비용 △운영비 등을 임대료로 회수하는 구조인 만큼 세 부담이 커질수록 임대료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 LIHTC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미국은 기업이 저소득층 임대주택을 장기 운영할 경우 10년간 대규모 세액공제를 제공해 자금 조달을 돕고 있다. 독일 연방 통계청(Destatis) 주택 건설 및 임대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임대용 신축 주택의 건축비를 초기 수년간 집중적으로 비용 처리해주는 '가속상각' 제도로 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 임대를 오래 유지할수록 세금을 깎아줘, 기업이 임대료 인상이 아닌 '장기 운영'에서 수익을 찾게끔 유도하는 설계다.
임대료 경쟁력과 공공성의 균형도 중요한 과제다. 기업형 임대는 관리 서비스와 시설 투자 비용이 반영되면서 일반 임대주택보다 임대료가 다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영국처럼 일정 비율의 '적정 임대료 주택(Affordable Rent)'을 의무화하는 대신 개발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업성을 보완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공공성을 확보하면서도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를 유지하려는 절충 모델이다.
진 박사는 특히 임대료 규제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그는 "조식이나 청소 등 고품질 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상품은 그에 맞는 임대료가 인정돼야 시장이 형성된다"며 "모든 임대주택을 공공임대의 기준으로 가격을 통제하면 기업들은 시장에서 철수하고 결국 세입자의 선택권만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이나 시카고의 대형 멀티패밀리 단지들은 △조식 뷔페 △반려견 산책 △24시간 도어맨 등을 제공하며 주변보다 20~30% 높은 임대료를 형성, 뉴욕 맨해튼의 경우 전용 50㎡ 월세가 4000달러(약 530만원)를 상회함에도 고품질 주거를 원하는 수요가 몰린다.
영국의 대표적 BTR 단지인 '겟리빙(Get Living)' 또한 △초고속 인터넷 △전문 청소 서비스를 포함해 런던 중심가 기준 월 2500파운드(약 420만원) 수준의 임대료를 유지한다. 영국 정부는 기업에 임대료 결정권을 부여해 수익성을 보장하되, 전체 물량의 약 20%를 시세보다 저렴한 '적정 임대료(Affordable Rent)'로 공급한다.
자본 시장 활성화 역시 핵심 요소다. 미국처럼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는 공모형 리츠 시장이 확대돼야 임대주택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박사는 "대기업 특혜 논란에서 벗어나 중소·벤처 기업들이 AI 관리 시스템 등을 결합해 창의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산업적 토양을 닦아주는 것이 60% 실질 세입자를 위한 가장 실질적인 주거 복지"라고 제언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또한 "전세라는 독특한 사적 금융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임대차 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5년 2분기 기준, 영국 전체 완공된 기업형 임대주택(BTR) 물량의 약 43%(56861가구)가 런던에 집중됐다. 현재 건설 중인 51,216가구 중 30% 이상이 런던에 위치, BTR 주택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 사진은 GS건설이 3년전 영국에 준공한 BTR 사업. [사진=GS건설]](https://image.inews24.com/v1/50618aa300aada.jpg)
미국과 영국 사례는 기업 자본을 활용한 임대주택 공급이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해외 모델의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제도 이식은 오히려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 교수는 민간 기업의 태생적 한계를 짚었다. 그는 "시장이 좋을 때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민간 기업 역시 전략적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기업이 정부에 지속적으로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전략적 요구'에 정책이 끌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단순히 대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중소·벤처 기업들이 전문 관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촘촘한 산업 생태계가 먼저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 역시 월세 중심 시장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했다. 그는 "선진국처럼 월세 비중이 높다고 해서 주거 문화가 자동으로 선진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월세는 구조적으로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세가 완전히 월세로 대체된다는 단순한 논리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며 "주거 서비스의 질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세화만 진행될 경우 세입자의 협상력만 약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업형 임대주택이 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임대료 수준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익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 구조상 일반 개인 임대보다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영국의 사례는 기업 자본을 활용한 임대주택 공급이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 수단으로 설계돼야 함을 시사한다.
기업에는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열어주되, 그 혜택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 완화와 보증금 안전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제도적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해외 모델의 핵심을 한국 시장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앞으로 국내 임대차 시장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민지 기자(itismjkeem@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