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대표하는 한국화학산업협회(협회)가 차기 회장 선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개편 국면까지 겹치면서 회장직 자리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통상 주요 회원사가 순번제로 협회장을 맡아왔던 관행마저 흔들리며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 될 조짐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협회는 직전 회장이었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오는 3월 회사에서 물러남에 따라 최근 정기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출을 시도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차기 순번이던 김종화 SK지오센트릭 사장이 회장직을 고사했기 때문이다.
협회 회장직은 LG화학, SK지오센트릭,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등의 순서로 2년 단위로 최고경영자(CEO)를 파견하는 순번제로 운영된다. 특정 기업에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마련된 장치였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돌아오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소극적 태도가 확산되며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고사의 뜻을 전한 김종화 사장은 협회 측에 사장에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SK에너지 사장을 겸직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역할 수행이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실제 그는 지난해 말 SK지오센트릭 대표에 올랐다.
비슷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SK지오센트릭은 2024년 말 순번이 도래했을 당시 최안섭 전 사장이 짧은 경력 문제를 이유로 회장직을 맡지 않았고, 그 결과 신학철 부회장이 한 차례 연임하는 임시 방편이 시행됐다.
협회는 다음 순번인 남정운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대표에게도 의향을 타진했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이에 따라 협회는 당분간 엄찬왕 상근 부회장이 회장 직무를 대행하는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협회는 향후 임시총회 개최 등을 통해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주요 회원사들이 잇따라 회장직 수락을 고사하고 있는 만큼, 차기 회장 선임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협회 회원사들은 표면적으로는 경력과 자사의 현안 등을 이유로 거절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회장직이 기업 경영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외 활동과 정책 대응, 회원사 이해 조정 등 책임은 크지만 가시적 성과나 보상은 제한적인 희생적 자리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석유화학 업황은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 증설, 수요 둔화가 겹치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다. 여기에 정부 주도의 사업 재편 논의까지 본격화되면서 협회장은 사실상 산업계와 정부 사이에서 민감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협상 창구 역할을 떠안게 된다.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 통폐합 문제까지 다뤄야 하는 만큼 어느 한쪽에도 부담을 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이 기피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자사 사업이 안 좋은 데다 정부와 사업 재편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면서 "특히 석유화학 기업 사장들이 오너가 아니라 대부분 고용 계약이 된 경영인에 불과해 혼자서 판단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순번제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난 만큼 상근 회장 체제 전환이나 역할·권한 재설계 등 구조적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