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김도은 기자]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질문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정치 현실이 혼란스럽거나 갈등이 첨예할수록 우리는 정치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19년 강연 「소명(직업)으로서 정치(Politik als Beruf)」에서 정치의 본질을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비유로 설명했다. 정치는 “열정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 비유에는 정치의 복합성이 응축되어 있다. 널빤지는 단단하다. 이해관계가 얽히고, 가치가 충돌하며, 사회적 갈등이 구조화된 공간이 정치다. 이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현실을 과소평가하는 태도에 가깝다. 동시에 너무 약하게 두드리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는 인내와 힘, 이상과 현실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는 영역이다.
베버는 정치가에게 세 가지 자질을 요구했다. 첫째는 열정이다. 이는 감정적 격앙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헌신이다. 둘째는 책임감이다. 신념을 주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결과까지 감당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셋째는 균형감각이다. 권력은 쉽게 과잉으로 흐르기 때문에,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감각이 없다면 정치적 힘은 공동체를 보호하기보다 손상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베버가 구분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대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신념윤리는 자신의 가치가 옳다는 확신을 중심에 둔다. 반면 책임윤리는 그 신념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까지 고려한다. 정치가가 이 두 윤리 중 하나만을 택한다면 위험해진다. 신념만 강조하면 경직되고, 책임만 강조하면 기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 두 요소를 긴장 속에서 조화시키는 능력이 정치적 성숙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현대 정치 환경은 더욱 복잡하다. 정보의 속도는 빨라졌고, 여론은 실시간으로 변동한다. 정치 전략가 박시영과 김계환은 『위너는 어떻게 결정되는가』에서 선거와 정치 과정이 얼마나 정교한 메시지 관리와 프레임 설정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분석한다. 이들의 논의는 정치가 이상과 가치의 영역일 뿐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전략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언론인 Franklin P. Adams는 “선거는 대개 어떤 후보를 지지해서라기보다, 누군가를 막기 위해 투표하기 때문에 결정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정치 참여가 반드시 이상적 기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회피하려는 판단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정치적 선택은 이상과 우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오늘의 한국 사회가 마주한 널빤지는 더욱 두텁다. 양극화와 불평등은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를 약화시키고, 저출생과 고령화는 경제 구조와 복지 체계 전반을 재설계하도록 요구한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업, 주거, 에너지, 교통, 농업, 해양에 이르기까지 사회 시스템 전체의 전환을 요구하는 구조적 도전이다. 여기에 돌봄위기까지 겹쳐 있다. 가족 구조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아동·노인·장애인 돌봄을 개인의 부담으로만 남겨두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복합 위기는 단기적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 소득 재분배 정책, 공정한 조세 구조, 지역 균형 발전, 노동의 질 개선, 사회안전망 강화, 돌봄의 공공성 확대, 기후 적응 및 탄소중립 전략 등은 서로 연결된 과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서 다시 베버의 통찰이 소환된다. 강한 추진력은 필요하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책은 지속성을 잃는다. 이상을 말하되 재정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고, 재정 논리만 앞세우면 공동체의 방향을 잃는다.
결국 정치의 과제는 공동체의 불안과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안전과 공정, 평등과 예측 가능성, 소통과 신뢰는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가치다. 문제는 이 가치들 사이의 균형이다. 한 가치가 과도하게 강조되면 다른 가치가 침식될 수 있다. 포용을 말하면서도 책임을 소홀히 하면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성장만 강조하면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다.
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분명하다.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 그리고 세대 간 정의가 구현되는 지속가능발전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정책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가늠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 안정, 즉각적 환호보다 구조적 개혁을 선택하는 용기가 요구된다.
베버의 ‘널빤지’ 비유는 경고이자 요청이다. 정치는 힘의 행사이지만 동시에 자제의 기술이며, 열정의 영역이면서도 냉정한 계산의 공간이다. 양극화와 인구위기, 기후와 돌봄의 도전에 직면한 지금, 정치는 더욱 두꺼워진 널빤지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으면서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어가는 인내의 정치만이 공동체의 미래를 연다.
열정은 방향을 제시하고, 책임은 결과를 감당하며, 균형감각은 권력을 절제한다. 그 세 가지가 함께할 때, 정치는 갈등을 넘어 희망의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요구받는 정치의 조건이다.
* 이 기고는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천=김도은 기자(dovely919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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