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이 23일(현지시간) 5일차 일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 포럼은 지난 19일 개막 이후 닷새 동안 국제 정세와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대화의 장’으로 평가된다.

공식 주제인 ‘대화의 정신(Spirit of Dialogue)’답게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계 거물들이 스위스의 작은 휴양 도시에 모여 실제로 대화하는 장면이 연일 포착됐다.
그린란드 갈등 속 모인 세계의 리더들
포럼 3일차였던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별연설은 분위기를 단숨에 경직시켰다.
동맹과 무역, 안보를 둘러싼 강경 메시지가 이어졌고, 그린란드를 포함한 전략 지역 언급이 나오자 덴마크와 유럽연합(EU) 내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연설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도 변동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유럽 주요국 인사들 간 비공식 접촉이 이어지며 공개 충돌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연설 후 마르크 뤼터(NATO 사무총장)와 회동하고 그린란드·북극 관련 ‘미래 합의(framework)’를 도출하면서 당초 예정됐던 유럽 추가 관세 위협을 철회했다.

강경 발언 이후 조율과 관리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다보스 포럼이 표방해 온 ‘대화의 정신’이 실제 외교 현장에서 작동했다는 평가다.
AI, 휴머노이드 로봇, 우주 산업, 중동 정세 등
공식 세션에서는 인공지능(AI), 우주 산업, 휴머노이드 로봇,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동 정세, 우크라이나 전쟁, 여성 건강 등 폭넓은 주제가 다뤄졌다.
주요 연사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나섰다.
산업계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AI 인프라와 기술 패권을 논의했다.


황 CEO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 대담에서 AI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프라 구축”이라고 규정하며, 지금까지 수천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추가로 수조 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가 단순히 기술 붐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구조적 엔진이 될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2일 깜짝 등장해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 대담 무대에 올랐다. 머스크 CEO는 이 자리에서 AI와 로봇이 향후 경제·노동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춥고 갈 곳이 딱히 없는' 알프스 휴양 도시라는 공간
다보스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장소의 특성이 있다. 교통이 불편한 알프스 고산지대라는 지리적 조건은 참석자들을 한 공간에 묶어두고, 격식을 벗은 대화를 유도한다.
1971년 포럼을 창설한 클라우스 슈밥 WEF 전 의장은 이 고립된 환경이 세계 지도자들로 하여금 연설보다 대화에 집중하게 만든다고 설명해 왔다.
공식 세션이 끝난 뒤에도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카페, 산책로에서 대화는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정 사이에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어려운 구조 탓에 참석자들은 반복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실제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던 한 재계 관계자는 “숙소와 레스토랑, 카페 등이 한정돼 있어 거물급 인사들의 동선이 여러 장소에서 겹치게 된다”며 “공식 일정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얼굴을 트고 대화를 나누면서 비공식적으로 가까워지는 계기는 분명 된다”고 귀띔했다.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는 추운 날씨도 한몫한다. 정장 대신 두꺼운 외투와 방한복 차림이 일반적이어서, 자연스럽게 격식이 낮아지고 대화의 문턱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기업인들의 깜짝 회동도 포착됐다.
황 CEO는 래리 핑크 회장과 21일 다보스 포럼의 메인 행사장인 콩그레스 센터 인근 카페에서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FT 등 외신에 포착됐다. 외신들은 두 사람이 마신 커피 한 잔의 가격은 18.9 스위스프랑(약 3만5000원)이지만, 두 사람의 나눈 대화는 향후 수십 조 원 대 파급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포럼 기간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 겸 회장과 만나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의 물밑 행보도 눈에 띄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포럼 기간 애플, 머스크 등 글로벌 기업과 각국 정부·국제기구 관계자들을 만나 50건 안팎의 양자 미팅을 진행했다.


2016년 다보스 포럼 주제였던 '4차 산업혁명' 이후 10년
다보스에서 거론된 산업과 의제는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방향을 좌우해 왔다.
2016년 포럼의 핵심 주제였던 ‘4차 산업혁명’은 현재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공지능(AI) 산업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전례를 감안하면, 올해 집중 논의된 AI 인프라와 휴머노이드 로봇, 물리적 AI 역시 향후 10년의 방향성을 가늠할 신호로 읽힌다.
한편 올해 포럼은 클라우스 슈밥 교수가 운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 열린 연차총회였다.
슈밥 교수는 고령과 최근 송사를 이유로 WEF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았고, 올해는 현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설계한 ‘고립된 공간에서의 비공식 대화’라는 다보스의 운영 철학은 여전히 유효했다는 평가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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