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가격 인상은 제품의 배타성(Exclusivity)과 브랜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필립 블론디오 샤넬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이 발언은 비쌀수록 구매욕구가 증가한다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대하는 명품 업계의 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격표 앞자리가 바뀔수록 선망의 강도는 세지고, 브랜드의 격(格)은 더욱 공고해진다는 논리다.
이 같은 '배짱 인상' 전략은 소비 위축이 장기화된 2026년 새해 초입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롤렉스와 에르메스가 연초 인상의 포문을 열었고, 이제 시장의 눈은 샤넬의 'N차 인상' 시점으로 향하고 있다.
![에르메스 '피코탄18'과 ' 에블린 16 아마존 백' 이미지. [사진=제미나이]](https://image.inews24.com/v1/b01a5ed91550d2.jpg)
5일 업계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이날 '피코탄'의 가격을 기존 517만원에서 545만원으로 약 5.4% 올렸다. '에블린'은 330만원에서 341만원으로 3.3% 인상했다. '부케 파이널 스카프 90'을 포함한 스카프 라인은 88만원에서 99만원이 됐다. '쁘띠 듀크 더블 페이스 스카프 90'은 109만원에서 121만원으로 11% 인상했다.
에르메스는 매년 1월 정기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데, 지역별 수요를 반영해 가격을 책정한다. 한국에선 지난해 이례적으로 1월과 6월 두 차례 10~15%씩 인상했는데, 이는 한국 시장의 높은 수요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가격이 오를수록 가치가 올라가 희소성이 커진다는 전략이다. 실제 주력 모델인 '피코탄 18'의 경우 지난 2024년 말 대비 무려 137만 원이 오르며 1년여 만에 33%가 넘는 누적 인상률을 기록했다.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도 지난 1일부터 일부 제품의 가격을 약 5~7% 인상했다. '서브마리너 오이스터 41㎜' 가격은 1470만원에서 1554만원으로, '서브마리너 데이트 오이스터스틸 옐로우골드 41㎜'는 2711만원에서 2921만 원으로 7.4% 올렸다. 산하 시계 브랜드인 튜더 역시 '블랙베이58 39㎜' 가격을 591만원에서 9.6% 오른 648만원으로 조정했다.
![에르메스 '피코탄18'과 ' 에블린 16 아마존 백' 이미지. [사진=제미나이]](https://image.inews24.com/v1/82e861d31c056c.jpg)
업계에선 이달 중순 샤넬과 루이비통의 추가 가격 인상 관측도 나온다. 일명 '에루샤'로 불리는 매출 상위 브랜드를 신호탄으로 도미노 인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샤넬은 매년 상반기 1~2월 사이 가격을 올려왔으며, 올해도 8% 안팎의 인상이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11월과 12월 영국과 유럽에서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을 각각 8970파운드(약 1543만원)와 1만1100유로(약 1610만원)로 상향 조정한 상태다. 전 세계 매장 가격 차이를 5% 이내로 유지하려는 샤넬의 정책상 한국 인상 폭은 최소 5%를 초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루이비통은 정기 시기를 정해두지 않지만 연 2~3회 기습 인상을 단행해 왔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보통 롤렉스와 에르메스가 스타트를 끊으면 약 2~4주 뒤 루이비통과 디올이 뒤따르는 것이 관례"라며 "원자재 및 물류비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하는 LVMH 그룹 특성상 설 연휴 전후가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업계의 배짱 인상에도 소비자들은 '오픈런' 행렬을 보이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4일 "당장이라도 샤넬이 인상할까봐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공홈(공식 홈페이지)에서 가격 안오른 거 확인하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는 등의 후기가 줄을 이었다.
'오늘이 가장 싸다'는 소비자 심리를 파고든 명품 업계는 올해도 역대급 매출을 예고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에선 에르메스코리아가 가격 인상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액이 최대 1조2000억원에 달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샤넬 코리아도 연매출 2조원을 돌파하며 첫 2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됐다.
유통업계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한국의 1인당 명품 소비액은 약 410달러(약 55만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3년 모건스탠리가 집계했던 325달러보다 25% 이상 증가한 수치로, 미국과 중국을 압도하며 세계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명품은 더 이상 소모품이 아니다"라며 "반복되는 인상이 '명품은 안전 자산'이라는 신념을 강화하며 불황에도 꺾이지 않는 수요를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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