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올해 석유화학 업계는 말 그대로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구조적 공급과잉과 수익성 악화가 길어지면서 업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 아래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개편 논의를 본격화했다. 여수·대산·울산 등 주요 산업단지별로 기업들은 연합과 통합, 설비 폐쇄를 포함한 재편 초안을 정부에 제출하며 일단 연내 과제를 마무리했다.

산단별로 보면 여수와 대산은 비교적 빠르게 윤곽을 드러냈다. 노후 설비를 중심으로 한 폐쇄 방안과 기업 간 협업 모델이 구체화되며, 감축 규모와 방향성도 어느 정도 공유됐다.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다는 인식 아래 각 기업이 일정 부분 부담을 떠안는 모양새였다.
반면 울산산단은 분위기가 다소 달랐다. 3대 산단 가운데 유일하게 NCC 감축안의 윤곽이 잡히지 않은 곳이 울산이다. 컨설팅업체를 통한 검토와 논의가 이어졌지만 실제 설비 감축이나 구조조정 실행 방안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과정에서 울산산단의 핵심 사업자인 에쓰오일의 태도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에쓰오일은 그간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 비교적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해 왔다. 실제 에쓰오일 관계자는 지난 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석화업계 구조개편,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NCC 감축이 능사는 아니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 물론 NCC 감축이 국내 석유화학 업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만능 '키'는 될 수 없지만 하나의 '단초'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을 쉬이 수긍하기 어렵다.
더욱이 에쓰오일은 내년 '샤힌 프로젝트'의 기계적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연산 18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능력이 추가되면 국내 석유화학 공급 부담은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산단의 국내 기업들이 설비 폐쇄와 통합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에쓰오일은 상대적으로 자사 이해관계에 무게를 둔 행보를 보인 것도 결국은 '샤힌 프로젝트'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결국 '누가 덜 아프게 가느냐'가 아니라 '산업 전체를 위해 고통을 모두 분담해야한다'는 문제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에쓰오일과 타 석유화학 기업의 온도차는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행보는 대중에게 자연스레 에쓰오일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한다. 에쓰오일의 모회사인 사우디 아람코가 매해 어마어마한 배당을 받아가는 것을 새삼스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의 한 축인 동시에 국내 소비자와 산업 전반에서 발생한 수익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라는 점에서 보다 복합적인 책임을 지닌 존재다. 이번 구조조정 국면에서의 소극적 행보가 자칫 국내 산업보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사우디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석유화학 대수술의 진짜 시험대는 내년이다. 정부 지원 여부를 떠나 각 기업이 어떤 태도로 구조조정에 임하느냐가 산업의 신뢰를 좌우하게 된다. 에쓰오일 역시 행동으로 신뢰를 증명해야 할 시점이다. 업계의 시선이 에쓰오일의 다음 선택에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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