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소진 기자] 2025년 국내 AI 업계는 정부의 강력한 성장 드라이브와 예상치 못한 글로벌 충격, 그리고 제도적 기반 마련이 동시에 이뤄진 숨가빴던 한 해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AI 3대 강국' 비전을 선언한 이후 AI 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투자를 예고했으며, 국내 AI 기업들은 국가대표AI 선발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c847ec1df2edf.jpg)
그간 모델 크기로 성능 경쟁을 벌여오던 글로벌 AI 시장에는 중국의 가성비 모델 딥시크가 등장하며 충격을 안겨줬고, 오픈AI 챗GPT의 독주는 구글 제미나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의 등장으로 한 풀 꺾인 모습이다. 산업에서도 이제 AI는 실험실에서 현장으로 이동해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 한해 국내외 AI 생태계를 관통한 주요 이슈들을 정리했다.
딥시크 쇼크와 中 AI 굴기…패러다임의 전환
올해 1월 등장한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는 전세계 AI 생태계에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 R1 모델이 GPT-4o 급 성능을 내면서도 개발 비용은 560만 달러(약 80억 원)에 불과했다. 오픈AI가 GPT-4 개발에 1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은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당시 나스닥은 3.07% 급락했고, 엔비디아는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5888억 달러를 잃었다.
딥시크의 혁신은 크게 3가지다. 저성능 칩(H800)으로도 효율적 알고리즘 설계로 최고 성능을 구현하고, 강화학습으로 데이터 비용을 절감했으며, 핵심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점이다. 무작정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알고리즘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 사건은 한국 AI 기업들에게도 시사점을 남겼다. 무작정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알고리즘과 최적화 기술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다만 데이터 유출 사고와 중국 서버 저장 문제로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딥시크 사용을 제한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의 균형이라는 과제도 함께 드러났다.
챗GPT 독주체제 균열…구글 제미나이 맹추격
글로벌 AI 시장에서 또 다른 극적인 변화는 챗GPT 독주 체제의 균열이었다. 구글 제미나이가 맹렬한 추격에 나서며 'AI 양강 체제'의 서막을 열었다.
구글의 강력한 생태계 연동과 함께 이미지 생성도구 '나노 바나나'의 돌풍이 그 동력이다. 단순한 텍스트와 사진만으로 전문가 수준의 3D 피규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9월 미국 앱스토어 무료 앱 부문 1위에 올랐고,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7월 4억 5000만 명에서 10월 6억 5000만 명으로 2억 명 급증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사내에 '코드레드(비상사태)'를 발령하고 대응에 나섰다. 오픈AI는 12월 전문 지식 업무 능력을 강화한 'GPT-5.2'를 조기 출시하며 맞대응하기도 했다.
센서타워 분석에 따르면 제미나이의 MAU 증가율은 8월부터 11월까지 30%로, 같은 기간 챗GPT의 6%를 크게 앞질렀다. 앱 내 사용 시간도 제미나이는 3월 대비 120% 증가한 반면, 챗GPT는 7월 대비 오히려 10% 감소했다. 압도적 1강 체제에서, 용도에 따라 여러 AI 모델을 골라 쓰는 '멀티 LLM'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버린AI'는 생존 문제…국가대표AI 선발전 개시
이처럼 미·중 AI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AI 주권 없이는 국가 주권도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으며 자국의 인프라와 기술로 구현한 소버린AI의 확보는 선택이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이 됐다.
정부는 국가대표AI를 개발하는 '독자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국내 주요 AI 기술기업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도전했고, 5개 정예팀(네이버클라우드·업스테이지·SKT·NC AI·LG AI연구원)이 선정됐다.
GPU, 데이터, 인재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은 5개 팀은 8월부터 4개월간 각자 차별성을 두고 모델 개발에 착수해 오는 30일 1차 평가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6개월마다 단계 평가를 반복해 최종 2개 팀만 국가대표 AI 개발팀으로 확정한다.
목표는 글로벌 최고 수준 모델(GPT-4o, 제미나이 등) 대비 95% 수준의 성능이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무빙 타깃'을 따라잡아야 하는 도전이다. 단순한 기술 성능뿐 아니라 실제 산업 적용 가능성과 글로벌 확장 전략까지 포괄하는 종합적인 평가가 이뤄진다.
피지컬·에이전틱 AI 확산…‘말’에서 ‘행동’으로
AI 기술 측면에서 가장 큰 화두는 '에이전틱AI'와 '피지컬 AI'의 부상이다. 에이전틱 AI는 사람이 시키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도구를 사용해 복잡한 업무를 완결하는 '자율형 AI'를 뜻한다. 구글은 지난해 말 제미나이 2.0을 공개하며 에이전틱 AI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39%가 AI 에이전트를 실험 중이다.
피지컬 AI는 한걸음 더 나아가 AI 두뇌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과 물류 현장에 투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2025년은 AI가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와의 결합으로 진화한 원년이었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피지컬 AI 선도국가 달성을 위해 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 반도체, 팩토리 등 주요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향후 5년간 약 6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광역별 AI 제조거점 구축, 공정 데이터 기반 실증, 스마트팩토리 고도화, 산업용 로봇 도입 등이 포함된다.
AI 기본법 국회 통과…진흥과 규제 첫 '갈림길'
지난해 12월 오랜 논의 끝에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내에서도 AI 산업을 위한 기본적인 법적 틀이 만들어졌다.
AI 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적 지원 체계를 수립하고, '고영향 AI(생명·안전·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와 '생성형 AI' 사업자에 대한 투명성·안전성 의무를 법제화했다.
내년 1월 22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법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여전히 진흥과 규제 사이의 협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안전 장치가 미흡하다는 시민사회의 비판과 산업 혁신을 저해한다는 산업계의 반발이 여전하다.
정부는 내년 1월 고시와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민사회의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딥페이크와의 전쟁, 그리고 'AI 리터러시'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그 악용 사례도 증가했다. 정교해진 딥페이크 기술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딥페이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1년간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1,449명을 검거했다. 충격적인 것은 피의자 중 61.8%가 10대, 30.2%가 20대로 10~20대가 90% 이상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사법부는 딥페이크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 체계 구축과 양형 기준 재설정 등을 추진한다. 경찰청도 2026년 10월까지 사이버성폭력 집중단속을 이어가기로 했다.
'가짜 AI 광고'도 심각하다. AI로 생성된 가짜 의사, 전문가, 유명인이 식·의약품, 금융투자, 불법 도박을 홍보하는 광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12월 AI 생성물 표시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손해액의 최대 5배) 부과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청소년 범죄 뒤에는 왜곡된 성인식과 AI 기술에 대한 무지가 자리한다. 가짜 AI 광고 피해는 AI 콘텐츠 식별 능력이 부족한 노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에 교육 현장에서는 'AI 리터러시' 교육이 필수 역량으로 부상했다. AI 기술의 원리와 한계를 이해하고, AI가 생성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판별하며,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한양대 교수)는 "OECD 평균 대비 한국의 AI 리터러시 지표는 27%나 낮고, AI 교육 관련 교사 연수 이수율은 12%에 그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딥페이크 범죄와 가짜 AI 광고의 확산은 AI 기술 발전이 단순히 경제적·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윤리·교육·법률이 함께 진화해야 하는 종합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윤소진 기자(soji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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