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된 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소수 선도 기업 중심 체제가 공고해졌다. 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주도한 것이다.
이 생태계는 가히 각사 이니셜을 차용해 'N-S-T 체제'라 부를 만했다.
202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3개 업체가 각각 AI 서버용 GPU,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HBM),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이끌었다. 여기에 수요가 집중되면서 실적과 점유율 또한 이들 업체로 쏠리는 흐름이 이어졌다.

2026년부터는 이 구도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거론된다. 메모리는 HBM4 전환기를 맞고, AI 반도체는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파운드리 역시 2나노(㎚) 공정을 둘러싸고 공급망 분산 전략이 본격화되는 국면이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엔비디아 중심 체제가 단번에 무너지기보다, 대안 선택지가 현실화되는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S-T 체제'는 유지되겠지만, 기술·수율·공급 안정성을 둘러싼 경쟁 구도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이른바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026년, AI 초입 '리더'들의 독주 계속될까
2026년 메모리 시장은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HBM)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지만, 독주 구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는 해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까지는 SK하이닉스가 HBM3·HBM3E를 앞세워 시장을 주도해 왔다. 미국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는 “AI 서버용 HBM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며, 선두 업체의 실적 가시성은 2026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HBM4 세대에서는 삼성전자 추격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D1c 기반 HBM4를 엔비디아에 가장 많이 공급할 것이란 가능성도 거론된다.
도이치뱅크는 “HBM4부터는 기술 격차보다 양산 실행력과 패키징 수율이 점유율을 좌우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반도체대전(SEDEX)의 SK하이닉스 전시관에 마련된 HBM4 전시공간.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60b2057a1eecf.jpg)
HBM 중심 구조에 대한 신중론도 병존한다. 노무라증권은 메모리 산업이 ‘3중 슈퍼사이클’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도, “HBM 프리미엄은 구조적이지만 가격은 사이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연산 효율을 높이는 대체 메모리 아키텍처가 등장할 경우, HBM 중심 수익 구조가 조정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범용 D램 시장에서는 가격 강세 전망이 뚜렷하다. DDR4·DDR5·차세대 DDR7 가격이 2026년 상반기까지 큰 폭으로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HBM 증산에 설비가 집중되며 범용 D램 공급이 제한되고, 서버·PC 교체 수요가 겹치면서 메모리 시장이 물량이 아닌 가격 중심의 ‘P사이클’로 전환됐다”고 진단했다.
AI 반도체와 파운드리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엔비디아와 TSMC의 우위는 유지되지만, AMD와 삼성전자 등 대안 공급선을 병행 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2026년은 원톱 체제가 무너진다기보다, 빅테크들이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기 시작하는 분기점”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대결도 새 국면을 맞게 된다. 엔비디아는 새해에 2월부터 AI GPU 'H200' 제품을 중국 고객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설 기간에 중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와 AMD의 AI GPU를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지만, 자체 '반도체 굴기'를 향한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
화웨이를 필두로 AI 반도체 성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고,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는 5나노 공정 양산을 위한 장비 개발까지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반도체대전(SEDEX)의 SK하이닉스 전시관에 마련된 HBM4 전시공간.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21d5d9ee2393dc.jpg)
2025년 반도체 산업, AI가 구조를 뒤집다
2025년은 반도체 수요 구조가 AI 서버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한 전환기로 기록됐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재개되며 엔비디아(AI GPU), SK하이닉스(HBM), TSMC(파운드리)의 독주가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30년 넘게 지켜온 D램 시장 1위를 내줬고, AI 시대 개막에 대응하지 못한 인텔은 고전 끝에 미국 정부의 투자로 생존을 이어갔다. AI 투자가 반도체 업황의 상단을 결정하는 한 해였던 셈이다.
AI 인프라 투자의 주체로 정부도 등장했다. 지난 10월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방한이 상징적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한국에 GPU 26만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글로벌 GPU 공급 부족 속에서 국가 단위 물량 배분이 공식화된 첫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반도체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단위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서버 확대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지형도 동시에 재편했다. HBM이 D램 성장의 중심으로 올라섰고, 파운드리는 2나노 공정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
노무라는 2025년을 “AI가 반도체 산업의 수요·가격·투자 논리를 동시에 바꾼 해”로 정의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