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국내 1위 금융그룹은 KB다. 2위 신한금융과 격차가 크진 않다. 옛 주택은행과 옛 국민은행이 합병해 생긴 KB.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을 기회로 판을 뒤집은 대표 사례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연금공단은 국내 대형 금융회사의 최대 주주다.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 주식을 대략 8.5% 정도씩 들고 있다. 금액으론 4조원, 3조원, 2조원 안팎. 국민연금은 2002년 합병 국민은행 때도 주요 주주였다. 사외이사 한자리도 당연직 몫으로 배정받던 시절이다. 2003년에 사달이 났다. 1년씩 이사를 파견하는 공단의 행태에 화가 난 김정태 행장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주식회사에서 이사회는 매우 중요한데, 회전문처럼 1년씩 노후 챙기듯 사외이사를 바꾸면 중장기 경영 전략을 어떻게 하느냐고 항변했다. 일개 민간 은행장이 정부급에 총질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나. 서슬 퍼런 관치금융 시대에 김 행장이 이겨버렸네. 국민연금은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철수했다. 여론이 김 행장 편이었다. 정부로선 굴욕이다. 그러나 그 뒤엔 국민연금만큼 센 금융감독원이 있었다.
김 행장은 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후 관(官), 반관(半官), 관변 학자들이 KB를 들락거리며 수년이 흘렀다. 김 행장과 함께 축출됐던 윤종규 당시 CFO가 대법원판결로 7년여 만에 살아 돌아왔다. 여전히 비슷한 문제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관가에서 정치권으로 축이 달라졌을 뿐. KB에선 2017년부터 4년 연속 사외이사 자리가 빌 때마다 노동계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 나비 효과다.
실현된 적은 없다. 모두 국제 의결권 자문 기구의 '반대 권고' 때문이다. 국내 대형 금융회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모두 50%를 훌쩍 넘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의결권 자문 기구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이 아이템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 원장이 국민연금을 콕 집어 말하진 않았다. 이미 학습이 충분해서 국민연금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실무자들은 너무 많이 간 걸 직감했는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얼버무리는데 진땀을 뺐다고 전해진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은행까지 침범(?)했다. 금융통화위원 당연직인 부총재를 빼고 노동계 추천 위원을 추가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의 검토 보고서를 작성한 국회 수석 전문위원은 '현행법은 금통위원들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등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대표성을 높이려는 법안 취지가 현행법 체계나 금통위 역할에 적합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자칭 진보 정부에서 이런 일이 자주 나타나는 현상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하면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다. 대통령은 진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여서 그렇다. 대통령실과 집권 진보 정당에서 대기업의 금산 분리를 일부 완화하자는 얘기까지 하는 마당에, 금융업계에 정부의 의중이 미칠 도구를 하나둘씩 집요하게 만들어가는 상황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 관치와 진영 정치는 보수건 진보건 뿌리가 참 깊다.
2026년 1월 2일. 곧 김정태 행장의 12주기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