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EV)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인프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로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전략 수정이 본격화된 영향이다.
미국 포드가 대형 전기차 중심 전략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체결했던 9조원대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해지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단면이다.
![배터리 산업의 중심 축이 전기차에서 에너지저장장치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챗GPT로 그린 그림]](https://image.inews24.com/v1/2fe9a29f9aff9a.jpg)
포드 전략 수정…보조금 폐지·EV 수요 둔화 겹쳐
LG에너지솔루션은 17일 공시를 통해 포드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장기 공급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해지 금액은 약 9조6030억원으로, 2027년부터 2032년까지 공급 예정이던 물량이다. LG에너지솔루션 지난해 매출액의 28.5%에 해당하는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계약 해지와 관련해 “고객사의 전동화 전략 변경으로 특정 차량 모델 개발이 중단되면서 일부 물량의 공급 계약이 해지된 것”이라며 “포드와의 중장기적 협력 관계는 지속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물량은 2027년 이후 공급 예정분으로, 생산 라인 증설 등 대규모 선제 투자가 이미 집행된 사안은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포드의 전략 수정 배경에는 EV 수요 둔화와 정책 환경 변화가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 구매에 적용하던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하면서, 포드는 전기차 중심 전략에서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포드는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 등 주력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최근에는 SK온과 추진하던 전기차 배터리 합작 사업도 정리했다.
이 같은 흐름은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전동화 속도 조절 필요성이 제기되자, 사실상 규제 적용 시점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조정하고 있다.
EV 캐즘 속 배터리 기업들, ESS로 방향 전환
완성차 업체들의 전동화 속도 조절은 배터리 기업들의 사업 구조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과거 EV가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면, 최근에는 ESS가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며 "사업적으로도 EV보다 ESS가 더 안정적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EV 배터리는 완성차 판매와 정책 변수에 직접 연동돼 수요 변동성이 크고, 특정 차종이나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반면 ESS는 전력망 안정화와 재생에너지 연계, 산업·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 등 구조적 수요를 기반으로 한다.
장기 계약 비중이 높고 고객군이 분산돼 있어 배터리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가시성과 수익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설명이다.
AI 데이터센터가 키운 ESS 시장
최근 ESS 시장 확대의 배경으로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가 꼽힌다.
AI 데이터센터는 연산 장비가 상시 가동되면서 전력 사용량이 크고, 순간적인 전력 변동과 정전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데이터센터 에너지 스토리지 마켓 분석 리포트’에서 글로벌 AI 데이터센터용 ESS 시장 규모가 2024년 15억8000만달러(약 2조1000억원)에서 2030년 26억7000만달러(약 36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성장률(CAGR)은 9.5%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북미 ESS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 공장의 일부 생산 라인을 전기차용에서 ESS용으로 전환해 현지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삼성SDI도 미국 ESS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대형 에너지 인프라 기업과 총 2조원대 규모의 ESS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27년부터 약 3년간 공급하는 물량으로, 미국 현지 공장의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대응할 계획이다.

SK온은 포드와의 미국 배터리 합작 구조를 정리한 이후, 45GWh 규모의 테네시 공장을 EV와 ESS를 병행 공급하는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SK온 관계자는 “테네시 공장에서 포드 등 다양한 고객사에 전기차용 배터리와 ESS를 공급해 북미 시장에서 수익성 중심의 내실화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