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아직 반팔을 입던 9월 초였다. 삼성전자 안팎에서 “어쩌면 4분기에 다시 D램 1등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다.
D램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고, ‘물량의 마법사’인 삼성답게 생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으니 하반기 말쯤엔 1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석달이 지난 12월 현재. 당시의 예상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달 사이 D램 가격은 급등했고, 일부 제품 기준으로는 2~3배까지 오른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외 고객사에도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공급하고 있다.
올초 여러 시장조사에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줬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최근엔 근소하게 다시 선두를 회복했다는 수치도 나오고 있다.
이 흐름이라면 내년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발표될 4분기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1위를 탈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30년 넘게 유지해온 D램 1위를 올해 초 SK하이닉스에 내준 상황을 내부적으로 ‘비정상’으로 규정해왔다. 그만큼 올해는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인 한 해였다.
경쟁력에는 기술과 시장 주도권이 모두 포함된다. 기술 경쟁력 회복의 신호가 HBM의 엔비디아 공급이라면, D램 1위 탈환 가능성은 시장 주도권 회복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긍정적인 상황이지만 회사 분위기는 차분하다. 이달 초 조직개편 이후 열린 임원회의에서도 “시황이 만든 호실적에 취하지 말고 내년 준비에 더욱 매진하자”는 주문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가 들뜨지 않는 이유는 다음 전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다.
내년부터 HBM4 양산이 본격화되면 경쟁력 판단 기준은 다시 기술로 이동한다.
HBM4는 미세공정 전환, 적층 구조 안정성, 패키징(PKG) 협업까지 난도가 크게 높아진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가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D램 1위를 탈환한다면 그건 ‘복귀전’에 가깝고, 실제 승부는 HBM4에서 난다.
삼성 내부에서도 “진짜 질문은 HBM4에서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느냐”라는 인식이 강하다. 단기 순위보다 구조적 경쟁력이 어디에 서 있느냐가 향후 2년의 성적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시장 역시 같은 기준으로 삼성을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D램 1위 복귀는 의미 있지만, 본격적인 평가는 지금부터가 아닐까.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들려오는 삼성전자의 HBM4 관련 소식이 긍정에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과거 일부 1등 기업은 기술 전환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한 단 한 번의 실수로 시장에서 퇴출된 적도 있다.
올초 삼성전자가 1위에서 밀렸을 때 많은 이들이 “정말 회복할 수 있을까”를 지켜본 이유도 그 경험 때문이다.
AI 시대 개막이라는 큰 흐름을 반도체 기업이 충분히 기민하게 읽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시황은 삼성전자에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이 기회를 기술·공정·패키징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그 숙제가 삼성전자에 더 중요해졌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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