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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글로벌 기업혁신파크, 포항의 혁신인가 또 다른 난개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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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진우 기자] 경북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 일원. 이곳에 '글로벌 기업혁신파크'라는 거창한 이름의 개발사업이 예고돼 있다. 미래 산업, 기업 혁신, 지역 성장이라는 수식어가 줄줄이 붙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실상은 '혁신'보다 '난개발'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보인다.

천마산 일대는 양덕동과 흥해읍 주민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도시 숲이다. 폭염을 식혀주고, 미세먼지를 걸러주며, 비가 오면 빗물을 흡수해 홍수 피해를 막아주던 자연의 완충지대다. 그런데 이 숲이 대규모 절토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사업지의 40% 이상이 경사지형이고, 지형 변화 지수는 4.78. 말 그대로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수첩 [사진=아이뉴스24 DB]

그 대가로 들어서는 것은 '기업혁신'보다 '아파트'다. 전체 사업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거·복합용지다. 5900세대에 육박하는 공동주택이 공급된다. 이미 포항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수천 세대 쌓여 있다. 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무게추는 분양 시장으로 기울어져 있다. 혁신의 외피를 두른 주택 개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 과정이 지나치게 조용히,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환경영향평가 공청회에 참석한 주민은 30여 명 남짓. 사업 규모와 파급력을 고려하면 믿기 어려운 숫자다. 사업성, 재원 조달, 토지 보상, 산업 유치 계획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부족했고, 주민들의 질문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형식은 있었고, 내용은 비어 있었다.

사업 구조 역시 시민의 불안을 키운다. 포항시와 대학, 대기업, 금융사, 건설사가 참여한 SPC(특수목적법인) 방식이다. 이 구조에서 이익은 민간에 귀속되고, 환경 피해와 안전 부담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반복돼 왔다. 사업이 흔들리면 SPC는 해산되고, 책임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그동안 전국 곳곳에서 확인된 '책임 공백'의 공식이다.

천마산 숲이 사라지면 천마지 수계도 위태롭다. 빗물을 머금던 숲이 사라지면 토사와 오염원이 그대로 저수지로 흘러든다. 이는 농업용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도시 침수와 가뭄 대응력까지 동시에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차전지 소재 공장이 밀집한 인근 산업단지의 환경 부담까지 더해지면, 흥해와 양덕 일대는 기후·환경·경제 위기의 교차로에 서게 된다.

포항시는 탄소중립을 말하고, 참여 기업들은 ESG와 지속가능성을 외친다. 그러나 지금 추진되는 개발 방식은 그 말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숲을 깎고, 산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세우는 것이 과연 포항이 말하는 '미래 산업 도시'의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시는 한 번 깎아내리면 되돌릴 수 없다. 콘크리트는 다시 숲이 되지 않는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지금 포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아파트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안전,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지킬 수 있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이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대구=이진우 기자(news111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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