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정수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양조장은 지역 주민과 여행객 모두의 발걸음을 끌어모으며 새로운 문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배움과 체험의 공간이며 때로는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장소로 변화한 것이다.
주말이면 막걸리, 맥주, 와인 등을 현장에서 맛보거나 직접 술을 빚기위해 양조장을 찾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술 한 잔하며 따뜻한 시간을 찾고 있다면, 경기도 곳곳의 양조장과 술 체험장으로 겨울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경주 APEC 공식 만찬주 '안산 그랑꼬또 와이너리' 그랑꼬또 와이너리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뻐꾹산길 107(대부도)에 자리하고 있다. 바닷바람 덕분에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적당한 습도와 큰 일교차로 당도도 높다. 와이너리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에는 전시와 체험 공간이, 오른쪽에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직접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존이 있다. 그랑꼬또의 '청수 와인'은 각국 정상들의 식탁에 오른 2025년 경주 APEC 공식 만찬주로 선정됐다. 적절한 산미와 당도가 조화를 이루는 청수 와인이 세계의 손님들에게 내놓을 정도로 인정받은 셈이다. 대부도 여러 농가의 청수 포도를 사용한 평소와 달리, 만찬주 버전의 청수 와인은 와이너리에서 직접 재배한 청수 포도만 사용해서 만든 단일품종 와인이다. 와이너리 투어는 30여 분 정도로 포도가 와인이 되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이후 테이스팅 시간이 이어지는데 청수, 로제 등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 중에서 세 가지를 시음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시음 대신 머그컵 만들기나 와인병 꾸미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나만의 머그컵을 만들고 와인병을 알록달록 꾸미다 보면 20~30분이 훌쩍 가버린다. 
포천시 원통산 남서쪽 기슭에 자리한 산사원에 들어서면, 먼저 마음이 잠잠해진다.
양조장에 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고요한 분위기로 사찰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든다.
공간은 내부 전시장과 외부 전시장으로 나뉘는데, 내부 전시장은 우리 전통주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시음장은 산사원을 운영하는 배상면주가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과실주, 증류주 등 무려 20여 가지가 넘는 주류를 제한 없이 시음할 수 있다.
다른 주류를 맛볼 때마다 개인 컵을 세척할 수 있도록 물과 퇴수대까지 마련한 세심함도 돋보인다.
물론 즐겁게 맛보되 과음은 금물이다. 성인의 경우 4,000원의 입장료를 내지만, 관람 후 2,000~3,000원 정도의 주류 한 병을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어 무료처럼 느껴진다.
시음장을 나오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진다.
어른 가슴 높이의 커다란 항아리 수백 개가 전시된 외부 전시장은 사색의 공간을 연상케 한다.
회랑처럼 이어진 건물의 이름도 ‘세월랑’이다.
세월랑 뒤에는 소쇄원을 모티브로 지은 취선각과 포석정처럼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울 수 있도록 설계된 유상곡수도 만날 수 있다.

유자 향으로 겨울을 깨우는 ‘화성 배혜정도가'
배혜정도가에서 생산한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도 경주 APEC 공식 건배주로 선택받았다.
알코올 도수가 5%로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데, 마시기 전 잔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유자의 상큼한 향이 느껴지고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함과 산뜻한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톡 쏘는 탄산감도 일품이다.
배혜정도가는 위생과 안전을 위해 양조장 내부 투어는 진행하지 않는다.
대신 양조장 입구에 체험장과 전시장을 마련해 이곳에서 진행되는 막걸리 빚기 체험을 할 수 잇다.
체험은 3.6L 담금 용기에 고두밥과 밑술을 섞고 물을 추가하는 1단 담금까지 진행한다.
이후 집에서 발효를 지켜보며 막걸리를 완성하게 된다.
시간이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이 체험의 재미다.
체험 후에는 배혜정도가에서 생산하는경주 APEC 공식 건배주로 선정된 호랑이 유자 생막걸리 등 주류 4가지를 시음할 수 있다.

양조장에서 즐기는 겨울 한 모금 ‘가평 술지움'
잣을 모티브로 한 특색 있는 외관으로 눈길을 끄는 가평 술지움은 삼각형 지붕이 겹겹이 이어져 현대적이면서도 독창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분위기는 더 특별해지는데, 내부는 고급 카페나 와인바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에 세련된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체험을 즐기는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기분이 들뜬다.
술지움의 매력은 체험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한데, 막걸리뿐만 아니라 증류주와 뱅쇼는 물론이고 모주 체험까지도 가능하다.
술만들기 체험뿐아니라 막걸리 술빵 만들기, 막걸리 비누 만들기 체험으로 가족, 어린이 여행객에게도 추천할만 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막걸리와 증류주 체험이다.
증류주 체험은 양조장에서 생산한 막걸리를 사용한다.
1L 막걸리를 사용해 약 150ml 증류주를 얻는데, 흥미로운 건 증류주가 떨어질 때 치자나 히비스커스 티백을 올려두면 노란 빛이나 붉은빛을 띤 증류주가 만들어진다.
완성된 증류주의 도수는 38~39도 정도다.
견학에선 전통주, 과실주, 증류주, 맥주 제조장이 각각 있어 다양한 술의 제조과정을 볼 수 있다.
술지움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서, 새로운 색과 향, 그리고 시간을 함께 빚어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캠핑과 와인 체험이 한 번에 '파주 산머루농원'
산머루농원은 와이너리와 캠핑장을 함께 운영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산머루농원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모두 머루 와인으로,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머루 재배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현재는 ‘감악산 머루주’라는 이름의 과실주를 선보이고 있는 산머루농원에서는 단순한 농원을 넘어 한 세대 이상 쌓아온 전통 위에서 만들어진 '머루 향기 가득한 경험'을 만날 수 있다.
산머루농원의 저장고에 들어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장고에는 3단 높이로 쌓아놓은 오크통이 가득하고, 저마다 이름표처럼 용량과 날짜가 적혀 있어 묵직한 시간이 켜켜이 쌓인 느낌을 준다.
와이너리 체험은 이 저장고는 물론이고 실제 생산 시설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머루가 와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농원의 인기 프로그램은 이미 생산된 머루 와인을 병에 담고 라벨을 직접 만들어 붙이는 '나만의 와인 만들기' 체험이다.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선물용으로 특별한 문구를 넣어 라벨을 만들 수 있다.
무려 40개의 사이트로 구성돼 있는 캠핑장 뒤로는 파주의 명산 감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풍경을 바꾸며 캠퍼들을 맞이한다.
낮에는 와인체험을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 불빛 아래에서 머루와인을 한 잔 나누며 하루를 채워보면 어떨까.

귀촌 양조인의 결실 '양평 맑은술도가'
도로 옆 상가에 '용문산 양조장 양평맑은술도가'는 양평의 명품 막걸리로 자리 잡은 '겨울아이 동국이'를 생산하는 정식 양조장이다.
양조장 대표는 귀촌인으로, 막걸리를 빚고 싶은 마음 하나로 지난 2019년 양평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대표 술인 '동국'은 사람 이름이 아니고 겨울 국화를 뜻하는데, 무려 2년여의 시행착오를 거쳐 태어났다.
겨울국화는 일반 국화보다 향이 진해서 막걸리와 매우 잘 어울리며 동국이 특유의 은은하고 진한 향을 만드는 핵심 재료다.
동국이의 입소문이 국경을 넘은 덕분에 외국에서도 체험자들이 찾아온다.
단체 체험객이 늘자, 2025년 초에는 지금의 양조장에서 차량으로 15분가량 떨어진 덕촌리에 새로운 양조장을 지었다.
아직 정식 준공은 되지 않았지만 하우스로 만든 체험장은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가며 새 양조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양조장 앞에는 대표가 직접 핑크뮬리도 심고 가꾸며 사진 명소로도 알려졌다.
도심 속 상가처럼 보이는 외관 뒤에, 이렇게 깊은 향과 긴 시간을 품은 양조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맑은술도가만의 또 다른 매력이다.
/수원=김정수 기자(kjsdm0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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